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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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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이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되풀이되는 흥미로운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지식의 대중화에 기여한 '인쇄기술'이나 시간을 계량화한 '시계' 등이고, 이밖에도 종교나 음악, 화폐 등도 많은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화에 기여한 '사상'도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주제이다. ‘사상’이란 사고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신념의 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상'은 역사적, 사회적 입장이 반영된 현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은 각 시대와 사회상을 대변하며 출현했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각 시대의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사상의 진화가 이루진것도 사실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정치사상이자 제도라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 Democratia로 'Demos(민중)'와 'Cratos(지배)'의 합성어이다. 어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민중,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사상이자 사회체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가 지배하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수의 통치라는 집단적인 자율통치를 지향하면서 시민의 자유라는 소수의 권리를 보장해야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존 스튜오트 밀, 알렉시 드 토크빌 등 민주주의 태동기의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변질될 위험이 있음을, 즉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다수의 의지가 소수의 권리를 짓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다수의 힘을 효과적으로 견제해왔고, 이러한 반다수결주의를 위한 제도의 도입은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지배에 있음을 지적한다. 합법의 경계 안에서 민주주의 허울을 쓴 극단자주의자들과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역사속에서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소수의 지배를 현실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현대의 민주주의의는 반다수결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불합리한 반다수결주의의 해체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간접선거와 강력한 상원을 기반으로 한 양원제, 대법원 판사 종신제, 헌법개정의 어려움은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할 과제로 거론된다.
책을 읽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헌법 수정 절차상 난이도 최상이라는 미국도 가장 최근의 헌법 개정은 1992년이었다. 한국의 경우 1987년 민주화 이래로 개헌의 시계는 멈춰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1조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표현'의 자유나, '소통'의 자유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수결로 인해 다수의 횡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괴리된 형식적 제도와 권리보장으로 극단적 소수의 지배가 실현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