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울프의 이 책도, "결혼" 키워드 검색으로 나온 결과. 

"결혼"이 나오는 대목보다 다른 한 대목이 더 와닿아서, 그것 옮겨오고 싶어졌다. 26쪽. 

 

공산주의가 어떤 점에서 나치즘, 파시즘보다 더 나쁘다. Corruptio optimi pessima. 최악은, 타락한 선이다. 공산주의의 뿌리는 인간이 가졌던 최선의 정치적 동기에 있다.

 

미르스키를 내가 처음 만난 건 파리의 제인 해리슨의 아파트에서였다. 뉴넘 대학의 탁월한 고전학자 해리슨은 내가 만났던 가장 문명화된 인간. 그녀는 이미 노인이었지만 영원히 젊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고, 가장 매력적이고 유머가 있으며 위트 있고 개성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미르스키를 좋아했다. 해리슨의 발치에 앉아 해리슨과 이야기하길 즐기던 사람이, 소비에트라는 광기의 거미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곳에서 숙청되어야 했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으로 채운다. 타락한 선으로서의 공산주의가 바보들을 재 속의 죽음으로 데려가고 또 데려가고 또 데려갔다는 그 사실이. 


미르스키는 레너드 울프가 알고 지냈던 러시아 귀족 남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 앞 페이지들에 생생한 설명들이 있다. 이것들은 노트해두지 않음. 지금 보면서 대강이라도 여기 옮겨 오고 싶은데, 8시를 넘어가는 이 때 힘이 부족하다. 이런 한 문장이 있다: "한 톨의 문명이라도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세계였다면, 그들(*미르스키같은 사람들)은 교양인/문명인으로 살고 죽었을 것이다. 공공의 악을 행하지도, 그로 인해 고통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최상으로 문학적이랄 그런 문장들도 있는데, 지금 보면서는 이 평범, 아마 진부한 문장이 강력했다. 문명을 자명한 가치로 보고 말하는 것도, 전면적 반성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아닌가? 아니라고요??? 


수업에서 결혼 주제로 얘기하면서, 좋은 결혼 이상적 결혼이 있기는 한가. 같은 질문에, 

한 세기 한 대륙에 한 커플 정도. (ㅋㅋㅋㅋㅋㅋㅋ 쓰고 보니 조금 웃김;;;) 그렇지 않냐면서 생각했던 건 역시 버지니아, 레너드 울프 부부. 무엇보다 레너드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확실하다. ;;;; (버지니아가 천재였다... 그건 말할 필요도 없고. 혹은, 상관이 아마 없고). 아내에게 유대, 헌신, 이해, 이런 걸 온전히 실천할 수 있었던 사람. 지성, 양심, 이런 것의 힘으로. 이 두 사람 관계에 대해 씌어진 글들 보면, 여러 종류 글쓴이의 못남을;;; 증명하는 글들도 있다. 빨리 이 주제로 돌아와서 정리하고 생각하면서 보고 싶긴 한데, 지금의 주제는 니체여야 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기도.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는 그게 일단 시작되면 완전히 끝낸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내가 누구와 결혼을 했고 그 사람과 이혼한다면 이혼이란 그 사람과 가족 관계의 끝냄인 것이지 

내가 그 사람과 알았던 일,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의 끝냄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 이런 얘길 해준 학생이 있었다.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이 정도로라도 복원해두고 싶었음. 들으면서 감탄했다. 나중에 내 감탄으로 채우면서 확장하고 싶은 말. 인간이 인간에게 (좋은 쪽이로든 나쁜 쪽으로든. 주로 나쁜 쪽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아는 사람의 말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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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검색한 결과에, 

이것도 10년 전인데 <우상의 황혼> 읽다가 옮겨 둔 것도 있다. 


제도란 것이 개인의 기벽/기행(idiosyncracy)을 토대로 세워진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해서, 내가 앞서 말했듯이, "사랑"을 토대로 결혼 제도를 수립할 순 없다. 결혼의 제도적 토대라면, 성욕이나 재산욕(아내와 자녀도 재산에 포함된다), 혹은 지배욕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배욕이 결혼의 토대일 때, 최소 단위의 지배 구조가 끊임없이 조직되는데 그것이 가족이다. (<우상의 황혼> "모더니티 비판")


여기엔 이런 (허접한... ㅋㅋㅋㅋㅋ) 감상을 적어두었다: 누구나 한번쯤 진심으로든 '인용'으로든 해본 말, "사랑이 밥먹여주냐..." 혹은, <약한척 남자 부려먹기>였던가 <미친척 남자 부려먹기>였던가, 그런 제목 책. 90년대 중반쯤인가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책. 그 책 저자가 썼던 다른 책,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풋. 이런 인식의 면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다 니체언........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로 알라딘 검색하니 나오는 책은 없다. "사랑하니까"와 "결혼한다고"는 각각 수백 혹은 수천 건 검색된다. "남자 부려먹기"로 검색하니 나온 책은,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약한척, 미친척이 아니라 어리숙한 척. 
















<미니마 모랄리아>엔 결혼(이혼)이 주제인 단장이 셋 정도 있다. 11번 단장이 그 중 하나. 영어판으로 읽고 옮겨 둔 게 있는데, 이런 식이다. 


이혼은, 심지어 선하고 친절하며 잘 교육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때에도, 먼지 구름을 -- 그것에 닿는 모두를 덮고 변색시키는 -- 일으킨다. 친밀성의 영역, 공유하는 삶에 대한 경계심 없는 신뢰가, 그 안에서 그것이 번영할 수 있게 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는 순간 독(毒)으로 변한다. 사람들 사이의 친밀성은 인내이며 관용이고 기벽들의 피신처다. 이 피신처가 바깥으로 노출되면, 그 안에 있던 허약함의 계기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혼에서 이같은 외부 노출은 불가피하다. 이혼은 친밀성의 창고를 압수한다. 한때 애정어린 보살핌의 표시였고 화해의 이미지였던 물건들이, 갑자기 독자적 가치를 획득하면서, 그것들이 품고 있던 사악하고 냉정하며 유독한 면을 드러낸다. 이혼한 교수는 전처의 아파트에 침입해 책상에 있던 물건들을 몰래 빼오고, 부유한 여자들은 그들의 남편이 탈세를 했다며 규탄한다. 만일 결혼이 비인간적 보편 내에 인간적 세포/섬을 형성할 마지막 가능성을 제공했다면, 결혼의 붕괴에서 보편의 복수가 일어난다. 보편은 규칙의 예외처럼 보였던 것을 포획하며, 그것을 권리와 재산이라는 소외된 질서에 종속시키고, 안전이라는 망상 속에 살았던 이들을 비웃는다. 아끼고 애착했던 것일수록 잔인하게 희생된다. 부부가 서로에게 더 관대했을수록, 소유와 의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을수록, 이들의 모욕은 더욱 무참해진다.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영역에서, 싸움과 비방, 이해 관계의 끝없는 갈등이 무성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혼 제도의 컴컴한 토대, 아내의 재산과 노동에 대해 남편이 행사하는 야만적인 권력, 한때 잠자리의 즐거움을 주었던 여자에게 평생의 책임을 지도록 남자를 강제하는, 그만큼 야만적인 성 억압 -- 이 모두가, (결혼이라는) 집이 붕괴할 때 웅크리고 있던 지하실과 기반으로부터 바깥 세상으로 기어 나온다. 각자를 구속적으로 소유하면서 선한 보편을 경험했던 이들이, 이제 사회에 의해 자신을 배덕자로 여기게끔, 구속 없는 비열함이라는 보편 질서에서 그들이 예외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끔, 강요된다. 이혼에서 보편은 개별에 찍힌 치욕의 상처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사회에서 결혼, 즉 개별자는 진정한 보편성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Minima Moralia, 11, "With all my worldly goods"


니체의 단장에서 밑줄 친 문장, "제도가 개인의 기벽을 기반으로 세워진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카우프만의 영어 역문에선 이렇다: Never, absolutely never, can an institution be founded on an idiosyncrasy; one cannot, as I have said, found marriage on "love.". 이 문장 독어 원문을, 내 집에 있는 최고 장식품 니체 독어 학생판 전집을 장식 아닌 목적으로 처음인가 두번짼가 이용해 찾아보니 이렇다: Man gründet eine Institution nie und nimmermehr auf eine Idiosynkrasie, man gründet die Ehe nicht, wie gesagt, auf die "Liebe." 


아도르노 단장에서 밑줄 친 문장, "친밀성은 인내이고 관용이며 기벽들의 피신처다"의 영어 역문은: Intimacy between people is forbearance, tolerance, refuge for idiosyncrasies. 그리고 독어 원문은: Das Intime zwischen Menschen ist Nachsicht, Duldung, Zuflucht für Eigenheiten. 


니체 문장에선 Idiosyncrasie가 그대로 idiosyncrasy로, 

아도르노 문장에선 Eigenheiten이 idiosyncrasies로 번역된 것인데, Eigenheit를 독한사전에서 찾아보니 "특징, 특성, 이상함, 진기함"으로 뜻을 달고 있다. 형용사 eigen이 영어로는 one's own (Room of One's Own), 그럴 때 own의 뜻 같던데, 그것을 명사화하면 "개성" 비슷한 뜻이 되는 거겠다고 이해함. 


idiosyncrasy (Idiosyncrasie) 이것도 "번역불가인 말"에 일단 올려둘 수 있을 것이다. 의미를 염두에 두면 "개성"이 무난한 역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성"이 한국어에서 쓰이는 용례들이 그걸 쓰지 못하게 할 것. 또 개성의 "개"보다는 기벽, 기행.. 같은 말에서 "기"의 의미가 이 말에 있다고, 어쨌든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기행도 기벽도 좋은 역어는 아니다. idiosyncrasy는 일회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습관적인 것도 아니라서. 


니체 문장을 책세상판 <우상의 황혼>에선 이렇게 옮겼다: "하나의 제도는 결코 괴상한 어떤 것에 기초해서 성립되지 않으며, 결혼은 이미 말했듯이 '사랑'에 기초해서 성립하지 않는다." 


아도르노 문장의 한국어판 번역은: "인간들 사이의 친근감이란 배려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독가시를 감싸주는 보호막이다." 오늘 아침 니체와 아도르노의 두 문장을 놓고 한국어, 영어, 독어를 오가다 생각이 자극됨. "개인"이나 "개성"이 (그것에 실제로 내용이 있을 때) 억압된다, 그것들은 여기선 중요성의 위계에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다..... 같은 생각도. 














올해 내가 산 비싼 책 top 10안에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인류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줄 책 top 100" 이런 걸 누가 어디서 선정한다면 후보작이 될지도 모를 이 책. 이 책 배송받고 넘겨보다가, "아 인간은 이런 일도 하는 존재다!" "누가 인간을 비방하는가..." "이 인간들(책 만든 사람들)을 보라.."며 혼자 감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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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의 첫번째 아내는 미국인이었고, 브린 모어 대학 출신으로 똑똑한데다 아름답기도 하고 여러 모로 시대를 앞선 사고를 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러셀보다 다섯살 연상이었다. 러셀이 그녀를 처음 만나는 건 열여덟살 때 일이고, 처음 만나던 무렵부터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작정한다. (괴테에게 그랬듯이 러셀에게도, 아메리카는 제약없는 자유의 땅, 특히나 섹스와 표현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였는데, 그것이 추가한 매혹도 있었고).

 

스물 한 살 생일을 맞으며 성년이 된 직후, 러셀은 그녀 알리스에게 청혼하는데,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 역시 결혼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러셀과 그녀의 연애는, 진보적인 남녀에게 왜 결혼이 필요한가에 대한 철학적 토론이 주된 화제였던 연애였다.  

 

스물 한살의 러셀이 내놓았던 의견은,

진보일수록 결혼을 해야 한다로 요약된다. 결혼은 나쁜 제도지만,

그게 나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해보임으로써, 해보이고 계속 비판함으로써, 전복할 수 있다. 또 진보일수록 '수도승과 같은 금욕'의 생활을 하면 안된다. 혼외 정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불러올 스캔들이 그들의 (정치적) 활동을 마비시킬 수 있을 거라서. (*여기서 "혼외 정사"는 뭔갈 잘못 옮긴 듯).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라면 거의 어김없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할 사람들일 것이므로, 그런 이유에서도 리버럴/진보는 결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도덕적 책임이다. "평균보다 어느 면에서라도 뛰어난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는 건, 부도덕하다"


결혼이 주제인 글을 수업에서 읽을 예정이라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결혼에 대한 단장을 다시 읽어보려다 "결혼" 키워드로 검색을 해봄. 근 10년 전 쓴 위와 같은 노트가 발견되었다. 레이 몽크의 러셀 전기 1부에서. 책 내용을 저 정도 옮겨 놓고 몇 줄 코멘트한 게 있는데: 러셀은 이젠 그리 깊이 있지도 재미있지도 않음. 21세때 그의 지적 성향과 습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에서 이미 예견되는 헛똑똑이 기질.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음. 


그러게.. 읽다가 동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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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거의 전부가 교수들인 Entitled Opinions에 

학부생이 게스트였던 에피가 하나 있다. 스탠포드 정치학과 3학년이었던 트루먼 첸이 출연하고, 

랜돌프 본이 주제였던 14년의 한 에피. 로버트 해리슨이, 트루먼이 얼마나 뛰어난 학생인가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하는 그런 에피가 있다. 랜돌프 본이라는 잊혀진 인물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트루먼 덕분이라든가, 트루먼을 보고 스탠포드 학부생들 수준은 저 정도냐 놀랄 필요가 없으니 그는 대단히 예외적이다.. 등등의 언급을 한다.  


랜돌프 본은 (저 에피에서 주워들은 게 전부인데 그에 따르면) 20세기 전반, 특히 1차 대전 시기 미국에서 타협없이 반전, 평화주의 입장이었던 좌파 사상가. 존 듀이의 제자였지만 듀이가 1차 대전에서 참전(찬전?) 입장이 되면서 불화가 시작되고 불화 이후 듀이는 랜돌프 본의 앞길을 막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듀이의 방해 때문에, 본의 글들이 제대로 (혹은, 전혀) 발표되지 못햇을 정도. 


아래 포스트 쓰고 보니, 학부생이 게스트면서 작정하고 공부 얘길 ;;; ㅋㅋㅋ ;;; 하는 팟캐스트도 (있다면)

오히려 어쩌면 한국에선 아주 신선할 (그리고, 재미있고 중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미 EO가 선례를 보여주었고. 저 에피에서 트루먼, 사실 그렇게 해리슨이 칭찬을 아낄 수가 없을만큼 탁월한 학부생처럼 보이진 않는데 그런가 하면, 어쩌면 학부생에게만 가능할 것같은 종류, 좀 드문 종류 진지함이 그에게 있다. 


저 에피에서 웃겼던 대목은, 제목에 쓴 저것. 

1차 대전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며 해리슨이 트루먼에게 질문한다. 

1차 대전이 어떤 의미야 너에게? 너와 네 세대에겐 혹시 트로이 전쟁 같은 거니? 

이러는 대목이 있는데, 이잉? ;; 하하하. 이런 반응으로 즐거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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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부터 수업에서 토론 주제로 쓰기 시작한 질문. 

니체나 울프, 그리고 수많은 다른 예들이 있는데, 19-20세기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주로 서구에서. 왜 한국엔 그에 비견할 사례가 없을까. 


울프 서한집들은 이렇다. 




호가스 출판사에서 새로 내고 있는 판본인듯. 



내가 갖고 있는 건 이 쪽이다. 


오늘 이 주제로 얘기하는데, 

아무도 길고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고,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한다....: 이런 답이 나왔다. 이런 내용이긴 했으나 표현이 이보다 더, 듣는 나에게 절실했던 말이었어서, 아 맞다 그거였지 !! 정확히 복원, 재생하는 보람이 지금 들지 않고 있다. 많지도 않고 두 단어 정도, 들으면서 밑줄 쳐지고 꼭 기억해야지 했던 말이 있었다. 답했던 학생은 인문학 전공 여학생. 오죽했으면 집에 오면서, 그 학생이 게스트 출연하는 팟캐스트.. 한국판 Entitled Opinions, 이거 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함. 호스트는 나. ㅋㅋㅋㅋㅋㅋ;;; 위에 적은 걸론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같은데, 굉장히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답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보탠 건,  

여성 언어는 관계의 형성 및 유지를 지향하고 남성 언어는 정보 전달을 지향한다는 (수업에서 읽었던 글) 그 얘기에서 여성 언어, 그것이 우리 언어의 특징이 아닌가. 한국에선 사적인 관계면 어디서나 거의 언제나 누구에게나 관계의 형성 및 유지.... 이것이 대화의 지향인 듯하다. 


즉석에서 생각나 보탠 것이라, 앞으로도 저렇게 생각하려면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이 세 번 등장한 짧은 문장. 나쁜 문장이겠다.) 그렇긴 한데, exchange of new ideas 같은 영어 구절이 그대로 옮겨져 "아이디어 교환"이 되면 갑자기 그 내용에 일어나는 쪼그라듬. 실제로, 이곳의 사상가들, 작가들, 예술가들이 블룸스베리 그룹이나 말라르메의 화요(요일은 헷갈린다, 목요였나?) 모임 같은 데서 그랬다듯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교환... 을 한 적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있지만 매우 약할 것같다. 강했다면 그들도 전설들이 되었고 나도 들어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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