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is the man himself
이 구절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했더니
데이빗 베컴 스타일부터 여러 옷 잘 입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얌전한 위의 이미지가 있어서 따온다. 그러고보니 화이트헤드의 문장, "스타일이 정신의 궁극의 모럴리티다
Style is the ultimate morality of the mind" 이 문장 포함 그의 글 "교육의 목적"에서 몇 문장을 수업에서 썼을 때
스타일... 개념을 같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 겪었던 기억 남. 데이빗 베컴 '스타일'의 스타일로 이해하는 학생들과.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은
카우프만이 <짜라투스트라>에 대해 했던 말을 그대로 해도 되는 책일지도 모른다.
좋은 편집자를 만났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거라면서, 하지만 "풍요한 아이디어, 심오한 통찰, 날카로운
에피그램에서 이 책에 필적할 책은 없다" "이 책은, 진흙 속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사파이어 같다."
<미학이론>에도 풍요한 아이디어, 심오한 통찰, 날카로운 한 문장. 이런 것들 많고
그들이 정말 '무더기'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검은(모호한) 흙 속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들처럼 보인다
느껴지기까지도 하는데, 그래도 어쨌든 저자가 출간까지 지켜본 책은 아님을 (사실 타계 직전 '탈고'한 원고라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그가 살았다면 적지않게 달라졌을...) 수시로 기억해야 할 책.
그런데 어쨌든 이 책에도 '글이 곧 사람' 적용할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의 가능성의 조건..... ;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이런 문장들을 쓰려면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어야 하고
그는 이런 삶을 살았어야 한다..... 고 규정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 사실 어떤 문장에든 이것 적용할 수 있지 않나.
아무라도 어떤 삶을 살든 쓰는 매우 흔한 문장들이 있고, 반드시 (인생사도 인생사지만) 깊이 느끼고 깊이 생각했던 사람이어야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는 것.
물론 인생의 불의 중엔, 깊이 느끼고 깊이 생각했지만 매우 흔한 문장만을 쓰는 일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나에게 닥친 불의..... 라면 오만입니까;).
'글이 곧 사람' 이 관념에 신경질적인 반응하는 이들과 그들이 주로 하는 얘기들
(글은 언제나 미화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글에 미달한다....) 여기도 진실이 있겠지만
더 큰 진실은, 그 미화 미달 왜곡을 보는 눈도 우리에겐 있으며 그래서 결국 글이 곧 사람이라는 것.
<짜라투스트라>만이 아니라 니체 저술 곳곳에, 민감한 '천재'(아도르노도 니체를 그의 동시대인 누구라도
능가했던 '천재'다... 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은 도대체, 어떤 진실이 있는 말인지 모르겠으나)였다면 누구든
썼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대목들이 있다. 누가, 어떤 삶을 살았어야 이런 생각을 이렇게 쓰는가. : 이런 경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들.
어쨌든 나의 불의. 나의 불행. ;
그래도 오늘도 6문장을 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