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서 syo님이 쓰신 카유보트의 그림들 중 

나는 이것이 특히 좋기도 했다. 제목: 오렌지 나무. 

85년의 여름이 기억남. 고향 읍내에 시내버스가 들어오기 전이었고 

읍내에서 면단위 작은 동네까지 걸어 다니던 시절. 세시간까진 아니라도 

두시간 정도는 그냥 걸어 다니던 시절. 친구네 집도 아니고 친구네 할머니 댁에 

친구와 같이 오래 오래 걸어서 갔던 날. 이 그림 속 하얀 흙길이 그 날 걸었던 그 흙길 같다. 햇빛이나 그늘도 

그 날의 그 햇빛 그 그늘 같고. 전화가, 심지어 면단위에선 그 당시에도 집전화가 흔하지 았았던 듯. 할머니 댁에 

전화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우린 연락 없이 갔다. 이상의 "권태"에 나오는 권태로운 아이들처럼. 갈 수 있으니까 감. 


마침내 도착했을 때 가마솥 있는 부엌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놀라지도 않고 반가워하지도 않던 일. 우리가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였나 (캡틴큐?) 

적힌 화보든가 포스터던가 벽에 붙은 친구의 삼촌 방으로 들어가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꺼먹소 라면"을 

얘기해서 눈물을 흘리며 웃었던 일. (*까만소 라면..... 이라고 잠시 나왔던 라면이 있었다. 할머니의 한 단어 사투리 번역). 


Stand by Me,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감정

체험, 상황, 자연... 이 어쩌면 거의 보편적인 건지도. 형이 죽은 다음, 가족이 무섭고 (그래서) 시체를 보러 가는 일은 모험이고. 하루 사이에 유년기의 끝이고. 그런 일. 


햐튼. 흐으. 채점을 종일 하다 보면 

채점이 아닌 무슨 일이든 재미있고 짜릿할 거 같아지고 지금이 그런 때. 


"내가 시민시험을 출제한다면?" 이 작문 주제에 

미대 학생이 예술, 예술체험에 관한 출제를 하겠다면서 예술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를 

저런 문장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artistic" means "experimental." 이것도, 이런 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인가 하면 굉장히 심오해질 수도 있는 말 아닌가. 나는 순간, 하아 이것 아도르노네....... 


<미학이론>에서 인상주의도 꽤 자주 언급된다. 

"행복한 예술, 인상주의에도 방법의 잔인함이 있다" 이런 문장도 있다. 

인상주의의 소재/주제는 평화로운 자연이 아니었고 인상주의자들은 그들의 그림으로 

문명의 파편들을 통합하고자 했다. : 이런 얘기. 그 밖에, 까다롭고 까다로워서 해석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보완도 해야 하는 얘기들. bbc 인상주의 다큐멘터리엔 심지어 <미학이론>에서 인상주의에 대해 제시된 

까다로운 지점들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 같은 대목들도 있던데. 그렇다면 정말, bbc 안 죽었네. (죽은 적이 없었다고! 인가....) 


어제도 끝엔 맥주 마시고 잤는데 

오늘, 조금 있다 그냥 자고 싶은가 하면 

맥주. 맥주다 맥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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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2-2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억하고 있는 어떤 그림이 카유보트 작품이었던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검색해보았더니 그건 존 싱어 사전트 작품이었네요. 문외한의 눈으로는 분위기가 카유보트와 비슷해보였나봐요.
그림의 저 숙녀분은 뭐하고 있는 모습일까요? 오른쪽 위에 저는 고양이가 누워서 자고 있는 것 같은 환청, 아니 환상을 보았어요.
캡틴큐, 까만소라면, 이상의 권태... 추억 돋는 페이퍼였습니다~ ^^

몰리 2016-12-25 20:32   좋아요 0 | URL
히히. hnine 님도 70년대 초 생이신 거죠. 까만소 라면은 라면계의 구본승이랄까 ;; 거의 세대 표지. ;;; 였어요. 몇 번 얘기해봤을 때 모른다 모르겠다 반응 겪다 보니, 그런 게 있었나 싶어지기도 했던 까만소 라면.

오른쪽 위에 엎드려 있는 건 큰 이미지로 보면 개로 보이긴 하는데
고양이로 상상해 보니 (개보다 고양이가 더 좋은 사람에겐 꼭 그러겠듯이) 별별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고양이의 그 뜬금없고 귀엽고 매력적인 동작, 표정. 그러다 지쳐 널부러짐. ㅋㅋㅋ 여름에 태어난 길냥이 3형제가 동네에 있는데 얘들 다 어찌나 뜬금없는지, 열심히 나무 타다가 (바로. 선택의 단계 없이) 낙엽 갖고 놀기. 그냥 막 뛰기. 그러다 가만히 있기.

전 남자는 신문을 읽는 척하고 여자는 책을 읽는다, 여자는 책에 집중하지만
남자의 관심은 여자를 향해 있다... 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고 있으니 그 반대로도 상상되네요.
남자가 햇빛과 오후를 즐기고 있을 때, 여자가 다가옴......... 책을 꺼냄. 두 사람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인 두 사람이라 해도, 아니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무엇이 있다 해도, 어느 쪽이든 상상이 자극되고 그게 매력인 그림이지 않나 해요.

hnine 2016-12-25 21:17   좋아요 0 | URL
꺼이꺼이...70년대 초 생 아니어요 ㅠㅠ 85학번인걸요.

몰리 2016-12-26 19:30   좋아요 0 | URL
언젠가 ˝위 아래로 다섯살 차이까지 친구할 수 있는가?˝ 주제로 토론을 해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한 명도 없었던 것같은 (손들어봐! 할 수는 없으니 느낌으로요) 그 놀라웠던 분위기. 위의 사람과 친구되는 건 ok, 아래 사람과는 한 살 차이와도 그러지 않겠다: 이 쪽이 다수였던 듯해요. 그런데, 이것도 정말 우리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진정한 곤경에 속하지 않나... 새삼 또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