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의 사진. 14세의 아도르노. 사진 찾아보면 파일명이 "adorno as a kid." 

전기에서 이 사진 조금 상세하게 얘기한다. "이사진에서 그의 눈과 코, 진지하고 예민한 소년의 얼굴이다. 세계는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그의 눈은 묻는 듯하다. (....)" 사진이 그의 가장 잘 나온 사진 같. 이 사진 이후 그는 역변............. 


그는 극히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여동생(언니가 결혼하면서 따라와서 가족이 된), 이모도 

성악가(... 라니 좀 이상하게 들림), 오페라 가수였고 음악을 깊이 사랑했다. 그의 집에 손님들이 오면 작은 연주회, 공연이 열리곤 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엔 연주회를 열 수 있는 큰 방과 가운데에 피아노를 둔 음악실이 있었다. 두껍게 장정된 악보들이 있었고 그 악보들로 모차르트 곡들을 처음 쳐보기도 했던 그는, 모차르트의 어떤 곡들은 이때 그 아이의 그 호기심과 매혹, 열정으로 연주되어야 하는 곡일 것이다 같은 감정을 오래 갖게 된다. 이 시절에 대해 "밤에 자다 잠이 깨면 아래 층의 피아노에서 베토벤 소나타가 들려오곤 했다" 같은 회고를 그는 남기게 된다. 


여러 얘기들이 있는데 무엇보다 "자다 깨면 베토벤 소나타가 들려왔다" 여기 

아........ 하지 않을 수 없다. 베토벤 소나타, 유튜브에서 음대 입시로 치는 버전이나 심지어는 예고 입시로 친 버전도 듣고 있는 게 고통이 아니던데요. (클덕에게는 극히 고통일수도. 막귀에게는, 리히테르나 굴드나 등이 치는 것과 좀 다르긴 하지만 이것도 아름다운데? 들을 수 있어! 여러 번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부유했던 이들이 남긴 (부유하다는 건 이런 것이다) 삶의 회고는 무엇이 있나. 갑자기 진지하게 알고 싶어진다. 그런 회고는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별로 없는 게 맞다면 왜? 논픽션으로 기억나는 건 없고 픽션으로 본 건 난쏘공, "젊은 느티나무" 정도. 부유한 삶만이 아니고 중간 계급의 삶, 빈곤한 삶,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삶들의 회고를. (이 포스팅도 "회고록 씁시다" 포스팅으로.....) 


음악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주할 수 없다면 들을 수 없다"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응? 피아니스트가 호른을 연주하지는 않잖아, 그러면 호른 연주에 대해 피아니스트는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인가? 그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 했는데, 그러니까 이 말은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 호른 연주자라면 호른, 에 대하여 그렇다는 뜻인 듯.  


아닌가? ;;;; If you cannot perform, you cannot hear. 이런 문장이었다. 

그런데 어쨌든 음악은 연주자로 살려 해도 그렇겠지만 음악학자인 경우에도 

음악이 풍요했던 어린 시절이 꼭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지고, 연주자나 음악학자까지 가지 않고 아도르노의 음악학 책들을 읽기 위해서도 그게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음악이 풍요했던 어린 시절, 이것도 아주 많은 회고들로 들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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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22-04-11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좋아요는 저 아름답고 섬세한 소년이에요.

몰리 2022-04-11 11: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왜 웃기죠 빵터짐. 소년 아도르노, 어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