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슐라르는 이런 화학 철학 책도 쓰셨다.
현대 화학의 일관된 다원주의.
뭔가 찾다가 몇 년 전 이런 걸 적어둔 걸 발견했다:
<과학정신의 형성>에
과학적 이성은 본질적으로 깊이 사회적이다.... 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화학이 고독한 이들의 지적 추구일 때 화학은 과학이 될 수 없었다. 화학이 과학이 되는 과정은
화학이 사회적 활동이 되는 과정이다.
"내가 옳은 걸로 충분한 게 아니다.
다른 누구의 오류에 "맞서" 내가 옳아야 한다.
내가 나의 합리적 확신을 실행할 때 거기 이 "사회적" 차원이 부재한다면, 내가 옳다는
확신은 사실 원한 감정에서 멀리 있지 않다. 타인에게 전하는 노력을 통해 내 확신이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내 확신은
내 영혼 안에서 응답받지 못한 사랑처럼(오해받는 뛰어남처럼) 작동한다."
저렇게 적어두고 나서
"바슐라르는 사회도 개인도 구제하는데
아도르노는 사실, 어떤 지점들에선 개인도 사회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적어둠.
적어둔 건 좋은데 저 인용 내용. <과학정신의 형성>이 출전일 거 같긴 하지만 아닐 수도 있고 (<과학정신의 형성>을 말했지만 정작 인용은 다른 책일 수도 있고) 쪽수가 적혀 있지 않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임? 쪽수는 반드시 적어 놓아라. 과거의 나는 못하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나는 꼭 그래라. 그래야 한다. 반드시 언제나 쪽수를 적어두어라.
쪽수가 적혀 있지 않아서 순간 조금 화가 났다.
일단 <과학 정신의 형성>으로 가서 해당 대목 바로 찾아내긴 해서 다행. 저 인용 내용에 바로 이어지는 바슐라르의 말씀은: "오해를 (things that are misunderstood) 꾸준히 줄여간다는 것. 현대 과학이 18세기 과학과 비교할 때 갖는 심리적 건강이 여기에 있다."
최근 구입한 어느 영어권 과학사학자 책에 바슐라르 인용이 조금 있었는데
그는 순진한 사람, 그의 시야는 매우 제한적. 이런 투였다.
그래요?
아닐걸요?
당신의 오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