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 조정희 장편소설
조정희 지음 / BG북갤러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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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강렬하다.
소년의 울음소리!

“소년이 입이 벌어지고 소리 없는 울음이 터져 나온다.

바람이 불고,
꽃잎이 흩날리고,
햇살이 온통 찬란한,
대기를 향하여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
주변은 도무지 소년을 울릴만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슬픈 상황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장면도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곤 소년밖에 없는 냇가에서 무슨 사연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있다면 정자 아래 벤치에서 소년을 지켜보고 있는 여자가 이유가 되겠지.”

소설 <망각> 속의 한 소년이 있다.
타인의 절망에 공감하는 소년
그 소년은 절망이 공감될 때마다 세상을 향해 운다.
그리고 자라면서 그 울음은 피아노로 바뀐다.
격렬하고, 때로는 비감하여 아름다운 선율로 세상에 공감하였고 그 음악은
공명되어 우주에 퍼져나간다.
소년의 피아노 소리!

그 피아노 소리의 공명은 세상을 살아가는 쓸쓸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을 마음을 감싸 안는다.


지하철 화재로 딸을 잃어 ‘잊어버리는 약’ 있으면 달라는 노부부의 외침 또한 소년에게
와 닿고, 소년의 ‘공감과 위로’의 피아노 소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 가져갈 것이 없는
죽음에 이르는 노부부를 위로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대개는 말이나 글이다.
타인을 알기 위해서 말로 대화를 해야 하고, 장소와 기계를 알기 위해서는 주의 사항과 취급사항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단 한 순간, 한 장면으로 가슴으로 머리로 그리고 온몸으로 이해할 때가 있다.
그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강렬하고 깊다.
그러나 그 순간도 그리 길지는 않다.

중학교 다닐 때 하교 길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한 일이 있다.
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사람이 하늘을 날았다.
그 순간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 느껴졌고,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위험하다는 사실이 각인되었다.
한참 멍하니 서 있었지만 사고 수습이 시작되자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한동안 공감된 아픔으로 이야기 했지만 지금은 그냥 사고 목격으로만 남아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는 사고,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저런 사건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공감하는 힘도 떨어졌다.
어쩜 나의 일이 아닌 것은 슬픈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소설 <망각>은
잊어버리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망각’이라 보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지 않는 것을 ‘망각’으로 보는 것 같다.

소년의 ‘공감’이 그런 것이다.

저자는 소년과 노부부를 통해 ‘공감’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인간사의 모든 기억도, 인간관계도, 가족관계도 살아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기억에 대해 저자는 노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
“기억을 어떻게 가졌다고 할 수 있겠어. 기억은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잠이 들어도 사라지는 걸.
언제고 어디서나 가지고 있을 수 있어야 소유지.
그러니까 기억의 소유라는 건 터무니없어 그걸 알고 나면 망각은 두렵지 않다고.
본래 가진 적이 없거든. 가지고 있다는 착각이나 욕심이었을 뿐이야. 망각에 이른다는 건 
드디어 욕망에서 벗어나는 거지 두려운 게 아니라고.”

그렇다.
그 소중한 가족 관계도 죽고 나면 망각되어 소멸된다.
모든 것은 살아 있을 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빛나는 가치는 타인의 입장이 되는 ‘공감’이다.


세상을 떠 도는 많은 의식들 그 의식들은 피아노 치는 소년에 와 닿고
소년은 오늘도 세상의 모든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는 피아노를 친다.

소년의 피아노 소리

책을 읽는 내내 공명되어 머리 속을 떠다닌다.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

소년의 음악처럼 공명되어 나의 머리 속을 헤집고 우주로 오르는 것 같다.

   '푸쉬킨' 쓴 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다. 책의 내용과 공감되어 와 닿았다.

 

떨어지는 한 개 잎사귀>


 떨어지는 한 개 잎사귀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우주의 먼 길에서, 여기까지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잎사귀가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잎사귀의 파동은 공간을 흔들고, 나무 그늘을 만들고,
내가 생각하는 시간을 만든다.
우주는 멀리 있지만, 한 개 잎사귀에 내가 깃들어 있다.
계절이 깃들어 있고, 지나가는 시간도 깃들어 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추억은 흔들리며, 시간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잎사귀가 흔들리면 그 아래에서 헤매 일 것이다.
지나가며 사라진다는 것이 지나친 추측이라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그 파동도 사라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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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메세지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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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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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유희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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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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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석제님을 만나 대화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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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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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든 정약용, 이덕무, 박지원.

그들은 못 말리는 책벌레였으며 메모광이었다.

<책벌레와 메모광>은 그들의 독서와 학문에 관한 책이다.

 

대한민국에서 나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정약용, 이덕무, 박지원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할지라도 이름을 듣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상당히 친근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만큼 유명하고 익숙한 이름이다. 적어도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리고 이들은 이 책의 저자 정민교수의 단골 연구 대상이며 저자가 펴낸 책의 대부분이 이들과 관련된 글이다.

이번 책은, 그들이 어째서 책벌레이고 어떤 메모를 남겼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학문적 문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파헤침의 결과물이다.

 

  책의 소장과 독서, 집필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에겐 늘 낭만적으로 와 닿는다. 실제의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면서도 말이다.

저자가 옛 책에서 메모를 발견하고, 메모의 내용을 따라 가다 다른 책을 만나고, 탐구거리를 발견하고, 마침내 확인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 낭만적으로 다가오는지, 나도 덩달아 충분히 즐겁고 흡족해진다.

조선 시대 최고의 책벌레, 이덕무는 생계를 위해 필서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을 얻기 위해 팔이 빠지도록 눈이 침침하도록 필서를 해야 했던 이덕무의 힘든 삶을 읽고 있는데도 그의 삶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고단한 환경 보다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 이덕무의 책에 대한 열정이 다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요술을 부렸던 지도 모르겠다  

 

**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신도 책벌레이자 메모광임을 은근히 드러낸다. 사실 <책벌레와 메모광>, 저자의 전작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에서 저자가 남긴 수많은 메모들 속에서 탄생한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책 읽기는 또 다른 책 쓰기란 생각을 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열정적으로 독서를 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방법으로 메모를 했고 옛날의 그 메모는 저자의 또 다른 메모로 넘어가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는 어떤 답이 얼마나 존재할까. 독서인구의 수만큼이나 많은 답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독서하는 한 사람으로써, 나도 답을 하나 더해 보려한다. 어쩌면 개개의 대답이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는 수많은 강물처럼 본질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머리를 가졌고 머리로도 즐긴다. 다시 말하면 을 즐긴다.

그리고 은 끝이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 하나를 깨치면 다시 다른 의문이 온다. 그래서 또 다른 을 향해 간다. 분야마다 다른 을 위해 일일이 스승을 찾아 나설 수는 없다. 여건을 다 갖추긴 무척 어렵다. 나의 시간과 비용도 문제지만 스승의 여건이 모든 구매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긴 더 힘들다. 그리고 현재의 인물이 아닌 경우가 거의 대부분!

그러니 독서야 말로 제일 큰 스승이 아니겠는가.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을 어디에서 이렇게 가까이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책을 대할 때마다 가슴 두근거리는 낭만에 젖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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