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배신 -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정은아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나이를 먹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다양한 분야의 친구도 가지게 되었다. 학교 동창부터 직장동료 그리고 동호회 친구까지

그들과는 공감대와 취미,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지만 서로 활동 분야와 경험, 직종이 다른 만큼 생각도 제각각이고 종교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모임의 장소, 먹는 음식, 대화 내용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평가도 그들의 색깔만큼 다른데, 보수적이다, 편협하다. 지나치게 종교적이다, 너무 개방적이다. 와 같은 평들이 그들에 대해 느끼고 있는 나의 생각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슨 기준을 가지고 이런 평을 내렸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전율이 왔다.

이것은 내가 나를 아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그런 판단을 할 만한 훌륭한 잣대의 소유자라는 착각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읽은 책,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그 영화와 책이 얼마나 괜찮은지 설파하고 보기와 읽기를 권유하고 내가 가보았던 여행지도 꼭 가봐야 한다고 선전하곤 한다. 이런 강요 역시, 내가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며 아름다운 것을 보아낼 눈을 가졌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친구가 있다.

나의 정치 성향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늘 그 친구와 부딪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다른 친구에게 종교를 바꾸라고 슬쩍 이야기하기도 한다. TV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의 얼굴이 보일 때는 채널을 돌린다. 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에서 댓글을 읽을 때도 편향되게 내가 좋아하는 글만 읽고 공감을 누르기도 한다. 이런 자신의 믿음을 관철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내가 침을 튀기며 감동을 전했던 인도 여행기를 듣고 인도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돌아와서 하는 말은 한 마디로 대 실망’.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네가 선택한 여행사가 나빴어였다. 이 무슨 해괴한 반응이었단 말인가. 친구의 입장과 시각을 완전 무시한, 결국 친구의 반응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나의 믿음만을 강조한 일방통행이 아니었는지.

이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그 해답에 대한 갈증이 이 책으로 인해 제법 해소될 수 있었다. 바로 마이클 맥과이어의 <believing>, 번역서 제목은 <믿음의 배신>이다.

마이클 맥과이어는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및 행동학부 명예 교수로 인간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지를 알고 싶어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 관찰 실험에서 인간의 뇌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뇌의 특성을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독자가 믿음의 근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 사례를 이용하여 대화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6, 믿음이 어떻게 당신을 지배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믿음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뇌는 믿음을 지닐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과대평가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기쁨과 보상, 자신이 옳다는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

뇌는 간극을 줄이려는 성향을 지닌다.

뇌는 믿음의 발전과 영구적인 보존을 용이하게 하는 수많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극만으로 믿음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본다.

감정에 따라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믿음은 뇌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믿음을 생성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든 지키려하는 성향을 타고 났으며 이 성향이 의식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위의 결론 중 인간은 자신이 믿는 대로 본다.”에 대한 그의 주장을 옮겨보면

214쪽

<강력한 믿음은 오래전부터 다뤄온 주제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차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모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과 반대되는 중요한 사례들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경멸을 보내거나, 한쪽으로 치워버리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의 권위가 이러한 치명적인 것들로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략>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가끔은 상상으로 만들어 질 때가 있다. 또한 인간은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믿음을 갈망한다.

<중략>

다시 말해 일단 어떤 믿음이 만들어지면 스스로 권위를 획득하게 되며 이 믿음을 오래도록 이어가기 위해 우리 뇌가 정보를 은밀히 조직한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보는 경향은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와도 일치한다.

우리의 뇌는 친숙한 절차와 믿음으로 구성된 문제해결 세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모델과 견본 형식으로 일종의 믿음의 서재를 구성해서 이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 서재에 있는 모델의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고 일부는 배운 것이며, 일부는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일부는 상상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모델의 형태를 의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믿는 대로 보는 경향 때문에 믿음이 갈수록 번성한다는 우려의 글을 옮겨보면

312

<우리는 자신이 열린 마음에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가끔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순간들도 많다. 종교, 정치 도덕, 가족, 소수민족, 심미학적 관점, 이웃 , 스포츠계의 영웅, 과학, 정치와 정치인, 이상한 행동과 욕망, 지역정부와 중앙정부, 국제기구, 토지이용, 배우자, 부모, 자녀, 애완동물 등 수많은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믿음들을 살펴보면 열린 생각과 사려를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경험 및 지식의 종류와 깊이는 사람마다, 장소마다, 뇌마다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매우 다양한 믿음과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비타협적인 믿음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은 매우 암울하다.

인간의 믿음에 대한 근사한 믿음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훌륭한 답변이 그 속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산다는 것이 순조롭기만 하지 않다. 그런 정도의 인식은 사춘기만 되어도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미 인생의 반을 지나온 나 같은 사람들에겐 사무치는 진실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가까운 친구와 불화를 겪으며, 자신과 친구를 탓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힐링 도서를 찾아 읽으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걘 어떻게 그렇게 생겨 먹었어?” 하는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번개에 맞은 것 같은 느낌으로 답을 얻었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불화는, 친구와 나, 두 사람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

각기 다른 비타협적인 믿음을 형성한.

<믿음의 배신>은 내가 만든 믿음이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공해 주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나를 알려면 나를 구성한 근본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배신>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도 권유하고 싶다. 개인의 믿음에 대한 실체를 이해하는 것도 자신을 아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임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자기계발서, 심리관련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자신을,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더 단단한 초석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 것을 알기에 매우 조심스럽긴 하지만.

믿음의 배신을 통해 나를 분석한 것

1. 나의 믿음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뇌의 작용,

2. 나의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강화되고 고착되어 객관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것.

3. 내가 내린 결정은 2번의 완전치 못한 믿음을 기반으로하기 때문에 결정하기 전에 의심을 하라는 것

4. 모든 인간은 자기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고, 믿는 대로 보기 때문에 잘 바꾸지 못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믿음과 부딪쳤을 때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노력하고 상대의 믿음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

5. 토론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언어가 아니라 타인의 믿음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언어로 해야 하므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는 노력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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