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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평점 :

[미술관에 간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책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저자. 내과 전문의로서 다른 미술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각을 전달한다. 캔버스 속 인물의 생로병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림에서 읽어낸 의사로서의 견해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림은 그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우리 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기대하며 주저없이 읽기 시작한 [60일간의 교양 미술]이었는데, 그랬는데. 곳곳에 의사로서의 시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작들처럼 의학적인 관점이 작품을 보는 주된 시선은 아니었다. 다른 미술책들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기분. 그림 관련 책을 보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리 신명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몇 권의 그림책을 탐독한 덕분인지 이제 좀 유명하다 싶은 그림들은 눈에 익었다. 아직 화가와 작품 이름이 매칭되는 것은 아니지만. 긁적긁적. 60일 동안 떠나는 미술 여행을 위해 여러 나라들이 등장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와 유럽 8개국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미술관과 박물관 관람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중심으로 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눔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디 몇 년 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감기처럼 여겨지는 때가 오기를. 사설이 너무 길었나요, 에헴!

유명한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번 책에서 내 눈에 들어온 작품은 영국의 화가 월터 랭글리의 <저녁이 가면 아침이 오겠지만, 가슴이 무너지는구나> 다. 버밍엄 미술관이 소장 중인 이 그림에는 두 명의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나이 든 여인이 고개 숙인 젊은 여인의 등을 말없이 어루만지고 있고, 젊은 여인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양 손에 파묻은 젊은 여인은, 그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깊은 슬픔이 전해져오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등을 쓸어주는 나이 든 여인은 마치 그 슬픔을 공감하는 듯 생생하다.
월터 랭글리는 영국 버밍엄 출신의 판화가이자 화가로 '뉴린파'의 창시자다. 그는 주로 가난한 어부들의 어려운 삶의 애환을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화폭에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랭글리가 주로 그린 어촌 뉴린은 당시 거대한 폭풍이 자주 몰아쳐 많은 어부들이 희생당하는 아픔이 컸던 곳으로, 자연재해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부들의 가족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이런 배경들을 알고나니 그림 속 젊은 여인의 슬픔이 더욱 진하게 전해져 오는 듯 하다. 혹시 나이 든 여인도 젊은 여인과 같은 아픔을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 사이에 흐르는 이 강하고 묘한 분위기에 한참동안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비록 저자만의 매력적인 견해가 돋보이는 책은 아니었지만 읽다보니 그 조곤조곤한 설명에 빠져든다. 아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또 휘몰아치듯 읽어버렸는데, 하루에 한편씩 음미하며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다.
**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마로니에북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