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마영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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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그만 선입견을 가져버렸습니다. 이 책에는 분명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엄마들이 얼마나 고생해가며 자식들을 키우고 집안을 지켜왔는지 그 처절한 삶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요. 그런데 난생 처음 보는 엄마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어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엄마의 얼굴을 한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얼굴을 한 엄마의 모습들이요.

 

자녀들이 부모의 성(性)적인 부분을 깊게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만 그런가요? 수줍었던(?!) 소녀 시절에는 자신이 남녀관계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도 않았고, 설사 상상을 했더라도 도리질을 치면서 떨쳐내기에 바빴었죠.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부모로서의 얼굴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드라마에서 '엄마도 여자였어'를 실감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어쩌면 우리 엄마한테도 있을지도 모를 또다른 얼굴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기분이었어요.

 

만화 속에서 엄마들은 자신들 각각의 사랑 때문에 애태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쉽게 헤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하기도 어려운 관계를 지속하는 소연을 비롯해, 남편 몰래 연하남과 만나는 경아, 매번 나쁜 남자에게 걸려 돈을 떼먹히기도 하는 연순 등 여전히 사랑이 이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소올직히 저는 여기 등장하는 그녀들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도대체 이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헤어지지 못하나, 대체 뭘 믿고 만난 지 얼마 안되는 남자에게 덜컥 돈을 빌려주나, 남편 몰래 연하남과 관계를 가질 정도로 그 나이에 여전히 남자가 좋은가.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그들을 비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신체적인 나이가 몇 살이든, 우리 모두 마음은 청춘이잖아요.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 새 나이는 이마안큼 먹었는데 외롭기도 하고 마음 붙일 누군가가 곁에 없다면, 내가 그녀들의 나이에 같은 처지가 된다면 어떨까 진심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품에 끼고 살았던 자식들은 어느새 다 커서 자기 앞길 찾아 떠나고, 남편과 살갑게 오순도순 사는 여성이 아니라면 누구나 사랑에 목마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여전히 여성을 공격하는 남성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직장 내 성희롱에 업무적인 압박. 그 모든 것을 견뎌가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엄마들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만큼 나도 나의 엄마를 한 인간으로 인식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엄마를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한다면 딸이랍시고 나서서 반대하지는 않겠다고요. 우리가 몰랐던, 혹은 모르고 싶었던 엄마들의 사생활. 그 모든 것이 여기, 이 책에 담겨 있었네요.

 

**출판사 <휴머니스트>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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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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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의 핫한 소재는 '선행성 기억 상실증'인 걸까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 사이에 같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두 권이나 읽게 되었어요. 특히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장식하는 수식어가 무척 화려합니다. 출간 3개월 만에 10만부 돌파, 2021년외국소설 1위, 온오프라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지금 SNS에서 가장 핫한 소설. 홍보문구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저로서는 약간 과장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게다가 한 줄의 독자리뷰.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라니, 요즘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기에 이거이거,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목석같다 싶을 정도로 감성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저도,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 무거운 소재에 비해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히노 마오리를 위해 가미야 도루가 쌓아올려주는 일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어요. 시작은 짓궂은 장난 때문이었지만 안타까운 마오리의 사연을 알게 된 도루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일상을 새롭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 채워주기 위해 굉장히 노력합니다. 병 때문에 아침마다 깊은 좌절과 허무를 느꼈을 마오리. 주위에 자신의 병이 밝혀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는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도루는, 심지어 그녀를 위해 자신이 진심으로 고백했다는 것, 자신이 그녀의 병을 알고 있다는 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할 정도예요. 어떻게든 마오리의 곁에 있고 싶었던 거죠.

 

이 가미야 도루라는 캐릭터, 아주 매력적입니다. 비록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하나 뿐인 누나의 행방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그 역시 사연 있는 사람. 그럼에도 어딘가 묘하게 기품 있고 단단한 심지 같은 것이 엿보이는, 흔한 고등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마오리의 곁에 있을 수 없었겠죠. 데이트를 할 때 도시락을 만들어가고, 항상 모든 것이 새로운 마오리를 위해 같은 일도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는 다정한 남자.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어쩔 수 없는' 다정함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마오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다정함에 이끌렸던 게 아닐까요.


내일의 히노도 내가 즐겁게 해줄게.


p 135

 

문득, 좋아하는 마음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대 소녀도 아니고,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느닷없는 의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의 저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아이들과 즐거우면서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그 안에 아이들이나 옆지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과연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도루의 마오리를 향한 마음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내일의 마오리도 자신이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것.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의무로 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순수한 그 사랑의 마음이 다시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결말에서는 정말, 누구라도 작가님을 원망하게 될 겁니다. 아니,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나, 너무 느닷없는 설정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 진심으로 분노했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련하게 우리 마음 속에 남을 작품. 마치 한 편의 감성 짙은 영화를 본 듯한 기분에 지금도 울컥합니다. 아마도 벚꽃이 내리는 봄이 되면 또 생각날 것 같은 이야기. 여운 깊은 이 러브 스토리, 추천합니다.

 

**출판사 <모모>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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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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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의 폭정이 심해지자, 사람들은 신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이에 신은 길가메시에게 맞설 엔키두를 창조해내죠. 엔키두를 기른 것은 바로바로, 야생동물들!! 그리고 엔키두를 야생동물들에게서 빼내기 위해 이용된 것은 매춘부 샴하트입니다. 과연 엔키두는 길가메시에게 맞서 어떻게 될까요.

서사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니 정말 시예요!! 얼마 전 [아이네이스]도 읽었는데, [길가메시 서사시] 가 좀 더 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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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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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태블릿 새 파편들이 계속 나타난다!
p12

인류 최초의 신화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드디어 읽습니다!! 완전한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낮봐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자료들이 출토되어 이 책을 지은 앤드류 조지가 첫 책을 낸 이후로 20년, 책 전체를 다시 손봐야 될 정도라고 합니다. [메트로폴리스]에서 그 내용을 약간 맛봤는데,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맞잡고 탐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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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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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였으나 자신이 따르던 정치노선을 비판했던 작가라고 평가받는 조지 오웰.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뒤 스탈린주의에 대한 그의 경각심은 높아지게 된다. 그는 죄없는 사람들이 단지 신조가 다르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유럽 사람들이 소련의 진정한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 내에서 소련에 대한 비판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소련이 연합국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자는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의 대표작인 [동물 농장]을 써내기에 이른다.

 

매너 농장의 존스 씨를 향한 동물들의 반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메이저가 자신들의 불행한 삶의 원인은 인간들의 폭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언젠가는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 충고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동물들의 반기. 결국 존스 씨는 동물들에게 쫓겨 농장을 떠나고, 동물들은 기뻐하며 자신들만의 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이때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된 동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돼지들. 이미 인간들의 글자를 깨우친 돼지들은 7계명을 선포하면서 사실상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다. 처음에는 풍요로웠던 농장 생활. 그러나 돼지들이 자신들이 내세웠던 7계명을 스스로 하나씩 어기면서 사정은 급변한다.

 

시작은 미약했다. 처음에는 젖소의 우유만 독식하던 돼지들은 그 다음은 사과를, 술을, 존스 씨가 살던 집을 차지하면서 권력의 맛에 취해간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 그저 돼지들이 자신들을 위해 엄청 고생하고 있구나,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충성을 바칠 뿐이다. 여기에서 오직 당나귀 벤저민만이 담담하다. 사정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연륜이 주는 깨달음. 돼지들이 끝내 인간을 흉내내버리는 결말 부분에서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조지 오웰 최고의 풍자와 비판 문학이라는 데 엄지를 척 들게 된다.

 


 

 

어쩌면 문제는 어떤 정치 노선을 따르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치에서 단 하나의 문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행보다. 개혁을 부르짖으며 역사에 등장했던 그가 과연 올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는 늘 부패의 위험이 뒤따르고 우리는 항상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통렬하게 전해져오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표지의 저것은 돼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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