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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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p93-95

 

제목만 봐서는 '이것은 동물학대가 아닌가!'라고 생각될 정도로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지금처럼 중성화수술이 없었던 시대에 동물을 버리거나 물에 빠트려 죽이는 것은 생각보다 일상적인 일이었던 듯, 다른 작품들에서도 몇 번 마주쳤던 장면이지만 '아니, 하루키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탓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동안 접했던 에세이들을 통해 어쩐지 그는 동물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근거없는 추측은 재즈와 맥주를 좋아한다는 점도 한몫한다. (아무 이유 없이)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일은 사실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관계된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적힌 첫문장.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느낌으로 고양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왔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보다 먼저 돌아와 '야옹' 울면서 살갑게 맞이하는 고양이를 보며 안도했던 그 순간의 느낌이 글을 통해 오롯이 전해져온다. 그리고 더듬어가는 아버지의 인생. 정토종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느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졌었던 이야기, 전쟁에 휘말려 끔찍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이야기, 학자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하이쿠를 지으면서 버텨냈던 시간들,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부모와 자식이라면 마땅히 겪었을 갈등같은 것,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소회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읽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쉽게 글이 쓰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접해왔던 그의 에세이와는 사뭇 다르게 가슴에 돌 하나 얹혀있는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져, 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여전히 리뷰를 남기기에는 머뭇거려진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어쩌면 작가에게도 쉬운 글은 아니지 않았을까.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고, 그의 인생을 따라가보고, 한 편의 글로 그 삶을 갈무리 한다는 것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이 책에 적힌 것은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이 다른 인간의 삶으로 이어지는 무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인생의 순환이라 불러도 좋고, 인간들이 이룩해온 역사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 로서의 무게감. 그 오묘한 신비. 에잇. 더 쓰지 않겠다. 무려 몇 달을 고민하고 쓴 리뷰인데 감정이 차오르는 것에 반해 더 나아갈 수가 없다. 독자의 리뷰가 불필요한 작품도 있는 것이다. 그냥 이 작품, 읽어보시라!!

 

**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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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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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 의 대미를 장식한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 총 네권의 작품들을 두 달여에 걸쳐 읽었더니 이미 지난 시즌 크리스마스는 훌쩍 지나버렸지만,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곰돌이들 덕분에 오랜만에 두근두근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데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책들로 인해 특별했던 시간들. 마지막으로 읽은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을까.

 

워낙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 지라 이제는 목차부터 훑는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다. 우선 좁은 식견으로 눈에 띄는 작가는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로 예전에 한 번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지만 그리 큰 감흥을 받지 못해 이어 읽지는 않았는데,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인 <그날 조사실에서는>은 꽤 마음에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찰서를 찾는 다양한 고객님들. 마약을 놓고 싸우던 사람들, 누나에게 주기 위해 양 인형을 훔친 소년, 단순히 사촌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 믿고 여름옷 차림으로 푸에르토리코에서 미국을 찾아온 부부. 심지어 이 부부 중 부인은 만삭의 몸이었다. 경찰서에서 시작된 진통. 그 진통과 출산으로 인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는 마지막 장면이 은근 감동적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현대적으로 묘사한 듯한 장면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첫 번째로 실린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그게 그 표라니깐요>는 읽다가 숨넘어갈 뻔!! 마침내 복권에 당첨된 초로의 남성이 기쁨에 못이겨 자신의 당첨 사실을 동네 바에서 만난 이웃에게 털어놓는다. 아니, 이 냥반아! 복권이 당첨된 것을 왜 말씀하십니까. 당첨 사실을 알았으면 후다닥 집으로 뛰어들어가 문 걸어잠그고 조신하게 다음 날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면 될 것을! 게다가 자신이 당첨된 복권을 어디에 숨겨놓았는지까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너무 답답해서 가슴을 쿵쿵 내리치고 말았다. 아내는 떨어져 사는 언니를 만나러 집을 비웠다. 날이 밝았을 때는 당연히 복권은 이미 사라진 상황!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설마 이대로 복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숨까지 차올랐더랬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죽음>은 짧지만 강렬했던 이야기.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건이 일어난 보럼 저택. 희생자는 실리아의 남동생 찰리의 아내, 제시. 실리아가 제시를 죽였다고 믿는 찰리는 그녀가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기를 원하지만 증거도, 상황도 충분하지 않다. 실리아의 범행을 어떻게 입증해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면, 마지막 한 줄에 머리가 띵! 앞으로 돌아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다시 읽었다. 라디오 생방송에서 30년 전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매드독>도 인상적인 작품.

 

두 어편의 이야기는 결말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어디에서 이런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나보겠나 싶다. 게다가 오롯이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미스터리도 있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있고, 호러 분위기의 작품들도 있는 이야기 맛집.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이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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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죄자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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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홀식스가 선택한 레이미의 이야기! 사람이 무섭다는 말,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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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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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이야기꾼, 원서로도 유명한 그의 작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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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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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이야기꾼, 원서로도 유명한 그의 작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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