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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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가 넘는 아르고스의 시선으로 작가가 바라본 세상,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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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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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 주로 CBS를 즐겨 듣는 나를 차분해지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클래식 프로그램. '클래식을 좋아하나?'라고 물으면 '좋아한다'고 대답하겠지만, 사실 좋아하는 곡은 몇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아주 열광적인 편은 아니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그저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할까. 명화와 마찬가지로 클래식에 대해서도 조금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왕이면 곡명이나 작곡가 정도는 알고 듣고 싶은데, 그것을 기억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30일 동안의 챌린지로 만나게 된 [90일 밤의 클래식]은 곡과 음악가에 대한 일화와 배경을 통해 클래식을 한층 친숙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어느 정도 이론적인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척 쉽다, 클래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아니고, 그저 가족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혼자만의 콘서트홀에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소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정도랄까.

 

이론 부분은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지만 악보를 통해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음악' 편은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악보에 수사학을 적용한 대표적인 '시각음악'은 바흐의 <요한 수난곡, BWV245>인데 책에 실린 악보를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레오르크 필립 텔레만의 작품인 <2대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걸리버 모음곡>은 정말 확 와 닿는 '시각음악'!!


 

안토니오 비발디가 작곡한 <플라우티노를 위한 협주곡, RV443>에서는 초등학교 때 신나게 불렀던 리코더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리코더는 17-18세기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악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용이한 휴대성과 자유로운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어 악기의 왕 바이올린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주선율 악기였다니 깜짝!! 플루트의 전신이 바로 이 리코더로 과거에는 '플라우토'라고 불렸다. 이것이 옆 방향의 가로식 피리로 바뀌면서 '플라우토 트라베르소'라고 불렸는데 직역하면 '횡 리코더'가 된다. 이때의 나무로 만든 트라베르소가 지금의 플루트로, 이것이 목관악기로 분류되는 이유다.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는 능력과 개인의 도덕성은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 특히 인상에 남은 인물은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그는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병적일 정도로 헛된 생각에 사로잡힌 음악가였다. 해리엇 스미스슨에게 구애하지만 그녀에게 철저히 무시당하자, 스미스슨에 대한 격한 감정을 음악을 통해 분출시킨다. 원망, 고통, 파멸, 배신, 환상 등 다차원의 정신적 감정을 동반한 특별한 작품인 <환상교향곡>이 탄생한다. 로마대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음악가로서의 기반을 확실히 다진 그는 후에 스미스슨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베를리오즈의 외도로 파경을 맞았다.

 

어렸을 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접하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그런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리하르트 바그너. 1852년부터 바그너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가인 재력가 오토 베젠동쿠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186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에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다. 이 초연은 바그너 음악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그의 수제자나 다름없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맡게 된다. 그런 그의 아내 코지와 바그너가 외도 중이었던 것!! 존경하는 스승은 자신의 아내와 놀아나고, 자신은 스승의 음악을 준비해야했던 뷜로의 심정. 으아,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이야기마저 더럽혀지는 것 같아서 이 챕터를 읽고 난 뒤에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드뷔시 너마저!!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어린이 세계>는 첫째 부인 릴리를 버리고 2명의 아이를 둔 유부녀이자 가수 출신인 엠마와 외도를 해서 낳은 딸 클로드 엠마를 위해 쓴 곡이라 한다. 유부녀와의 외도, 그 사이에서 낳은 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넘치는 사랑을 주체 못한 음악가들이여, 어찌할까!!

 

QR 코드의 발명에 무한 감사를! QR 코드가 없었다면 게으른 나는 어쩌면 검색도 하지 않고 글만 술렁술렁 읽어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꿀같은 감상팁까지 더해져 클래식을 아주 조금은 더 알게 된 기분. 이 사랑,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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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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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 관련 서적을 연달아, 그리고 동시에 읽었다. 장점은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 확실히 각인된다는 것. 단점은 이 사람의 설명과 저 사람의 설명이 약간씩 다른 부분이 있어 조금은 아리송하다는 것. 그래도 최근 두 세달 동안 집중적으로 미술관련 서적을 읽으니 그림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90일 밤의 미술관]은 출간 되었을 때부터 관심가지고 있던 책으로, 총 다섯 명의 도슨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 이야기를 한편 한편 짧지만 강하게 전달해준다. 학교 다닐 때 동양미술사 강의를 들으면서 한때나마 도슨트를 꿈꿨던 적이 있다. 그 때는 대학원 진학을 그쪽으로 해볼까도 심각하게 고려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결심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다섯 명의 도슨트들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새삼 부러우면서도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여 인생을 보내는 기분이란 과연 어떨까.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책에서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확실히 눈에 들어온 그림 한 점이 있다. 바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제목 보자마자 똭! 그림이 머리속에 떠오르는데 이렇게 신기방기할 수가!! 얀 반 에이크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이자 '현대 유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 색을 내는 안료가 엉기게 하는 용매로 달걀 대신 기름을 사용한 그의 발명은 미술사 측면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유화는 기름을 매개로 하여 마르는 속도가 느려 자연스럽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림 완성이 가능하며, 여러 번 덧칠이 가능하여 물체의 부피감과 명암 표현에도 유리하다.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보는 순간 가슴이 따끔거렸다. 손으로 더듬더듬,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는 한 여인. 제인 그레이는 영국의 왕족이었지만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성공회 간 종교 갈등과 권력 다툼 때문에 단 9일 만에 여왕자리에서 폐위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헨리 8세가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로부터 얻은 아들 에드워드 6세는 왕이 된 지 6년만에 열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왕위 서열 1위였던 메리(첫 번째 부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탓에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한 성공회 측 귀족들은 에드워드 6세에게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임명하라고 부추긴다.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의 여동생의 외손녀로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이다.

 

메리는 왕위 서열 1위라는 대중의 지지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군대를 일으켜 제인 그레이를 폐위시키고 여왕이 된다. 제인 그레이는 반역죄로 런던 탑에 갇히게 되지만, 제인을 안타깝게 여긴 메리는 그녀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인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신념이라니! 들라로슈는 어둡고 칙칙한 감옥에서 홀로 빛나는 제인의 창백한 피부와 순백의 드레스를 통해 비극을 강조하고 있다. 제인의 창백함은 신념의 고귀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도 하다.


 

미술 서적을 탐독하면서 얻은 최고의 수확은 '마르크 샤갈'이다. 이 책에 실린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은, 이제 페르메이르의 그림들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피카소로부터 '마티스가 죽으면 색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화가는 샤갈 뿐이다'라는 찬사를 들은 마르크 샤갈. 그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벨라 로젠펠드는 1944년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샤갈은 상실의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벨라가 죽기 전부터 그리기 시작해 그녀의 죽음 후에 완성된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들>. 그의 자서전 [나의 삶]에 따르면 그를 다시 그림 앞으로 불러들인 것은 '열린 창문을 통해 벨라가 그의 곁으로 데리고 왔던 푸른 공기, 사랑과 꽃'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화가인 반 고흐는 물론, '넘치는 살을 그린' 화가 루벤스,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인상주의'라는 말의 어원을 만들어낸 모네, 자화상을 통해 삶의 빛과 어둠을 드러낸 렘브란트, '오늘날의 관종'이라 표현된 살바도르 달리, 자신의 비극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여인 프리다 칼로 등 여러 화가의 그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자리. 30일 간의 챌린지를 통해 그림 하나하나를 마음 속 깊이 담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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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수학자 - 캔버스에 숨겨진 수학의 묘수를 풀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이광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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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기게 될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가 제일 어려울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나는 이 [미술관에 간 수학자]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그림 관련 이야기는 당연히 흥미로웠지만, 그 뒤 이어지는 수학 공식이라거나 원리 이해를 돕는 설명에서는 머리도 눈도 뱅글뱅글.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명화 속에서 수학 원리를 도출해내는 글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림을 볼 때 단순히 이야기에 집중해왔고, 학창시절 내내 수학을 공부하면서 '대체 수학을 어디에 사용하나' 투덜거렸던 내게 그림 속에서 보여지는 소실점이나 원근법, 기하와 같은 수학 원리 등은 신비로운 경험 그 자체였다고 할까. 과장 조금 보태서, 어쩌면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명화도 발전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르네 마그리트가 원근법을 이용해 착시를 일으킨 작품. <유클리드의 산책>은 대표적인 원근의 착시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아무리 연장해도 절대 만날 수 없는 직선'을 평행선이라고 정의한 것에 대해, 마그리트는 그가 옳지 않을 수도 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림의 왼쪽 원뿔 모양의 탑과 오른쪽 도로를 한 화면에 그린 것은 평행선으로 이뤄진 도로도 원뿔처럼 한 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걷고 있는 도로의 끝이 멀리서 만나 원뿔처럼 보이는 것이 이 그림의 착시!!

 

나처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런 그림은 나라도 그리겠다!'라고 여길 뻔했던 그림이 있다. 바로 몬드리안의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이다. 얼핏 보면 우리집 아이들이 평행선 몇 개 그려놓고 그 안을 색깔들로 가득 채운 것 같은 이 작품에는 빨강, 파랑, 노랑 3원색 혹은 검은색, 흰색, 회색의 무채색만을 사용하기, 직선과 사각형만으로 구성하기, 미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대비를 사용하기 등 창작의 원리가 숨어 있다고 한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을 '신조형주의'라 규정했는데, 직선, 수평선, 원색, 무채색만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진리와 근원을 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경우도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 그저 유명한 목판화인 줄 알았던 이 그림에는 '프랙털'이라는 구조가 그려져 있다. 부분의 모양이 전체 모양과 닮아 있을 때 '자기 닮음'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고, 자기 닮음 모양의 성질을 지닌 도형을 '프랙털'이라고 한다. 일부분을 아무리 확대해도 그 구조는 확대하기 전과 똑같은 모양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삼각형 모양의 파도가 여러 개 겹쳐서 마치 발톱을 세운 괴물이 배를 집어삼킬 듯 하다. 작은 파도는 뒤쪽 후지산과 파도의 선이 똑같아 그림 속에 마치 후지산이 두 개 있는 것 같다. 파도를 관찰해 보면 큰 파도에 작은 파도가 부서지고 있는데, 그 모양이 큰 것을 줄인 것 같다. 또 가장 작은 부분들도 반복적으로 연결되어 프랙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소올직히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건 좀 확대해석이 아닐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수학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나의 지식 부족에서 온 생각일 수도 있지만,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또 그렇게 보지 못할 이유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다섯 권을 완독하고 난 지금 무척 뿌듯하다. 내용 이해의 완벽성을 떠나서 평소 어려워하던 과학 분야를 그림을 통해 조금은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 우리 세상은 이렇게나 경이로운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두 어달 정말 열심히 읽어온 시리즈. 앞으로도 다양한 학자들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이 시리즈를 계속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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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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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속이 뒤집어지는 듯 하다. 만약 시라이 도모유키의 전작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를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펼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이런저런 일본 미스터리를 많이 읽어왔다고는 해도 '인간을 먹는다'는 행위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고, 상상이 된다고 해도 머리속에서 금방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의 소재인 것이다. 자연에서는 같은 종족을 먹는 동물들도 더러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인간의 DNA에는 동족을 먹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라도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출판사 측에서도 이 작품을 출간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 아니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는데! 역시 이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에는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다.

 

7년 전 가을, 온갖 포유류와 조류, 어류에 감염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일으켰다. 강한 독성, 약에 대한 내성까지 겸비한 이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전이되었고, 대량의 가축과 야생동물의 살처분은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인간이 사는 마을까지 살처분 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맛보게 된다. 사람에게 감염된 경우의 치사율은 50%가 넘었고, 엄청난 고통을 겪은 뒤의 죽음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갔다.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기는 했지만 백신은 아니었고, 이 재난을 계기로 사람들은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쌀과 야채만 주면서 아이들은 성장 장애에 빠지기 시작했고, 사회 문제로 발전하면서 설립된 것이 '플라나리아 센터'라는 식육 가공 시설이었다.

 

'플라나리아 센터'는 식용 클론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기관으로, 클론을 먹는 것은 그 클론을 만든 본인이다. 결코 다른 사람의 클론은 먹을 수 없다. 성장 촉진제 투여를 통해 일반적인 인간의 열 배에서 오십 배나 되는 속도로 나이를 먹어 신체는 성숙해도 지성은 부족한 존재가 되는 클론. 그들은 살처분되어 머리 없이 고객에게 배달된다. 엄청난 비난을 딛고 '플라나리아 센터'를 설립한 것은 후지야마 히로미로, 본래 유전자 공학의 제 1인자였다. 그런 그의 정적으로 활동하던 노다 조타로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후지야마 히로미가 용의자로 몰린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존재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로 일상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때문인지, 작품의 설정이 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인류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 안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해당해야' 하는 클론의 존재는 그저 도살되는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적으로 배양되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살처분 되어 머리 없이 고객에게 배달되고, '음식'의 하나로 몸 속에 축적되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나리아 센터의 직원 가즈시가 사적으로 '키우고 있는' 클론 차보를 보면, 그에게도 엄연히 인격과 존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과 직접 접촉할 수 없지만 책을 통해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는 그의 지성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다. 아무리 클론이지만 인간이므로. '평범한'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누군가에게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품 중반까지 이어지는 미스터리는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속도감을 가지고 독자를 채찍질한다. 이쯤되면 작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읽는 걸 멈출 수 있겠어?'. 생각지도 못한 반전, 정말 미쳤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상상력에 압도당해버린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인간'임에도 작가가 선보이는 통쾌한 결말에는 함께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본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평처럼 '가차없는' 잔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시라이 도모유키 세계의 문을 열어버리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는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의 최종 후보작으로 올라온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결국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작가가 선보이는 상상력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결국 읽을 수밖에 없다. 표지 속 문이 마치 그의 세계로 통하는 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문제작. 쉽게 열 수 있는 문은 아니다. 그러니 신중하시라.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읽게 되는 것. 이것이 마성인 듯도 하다.

 

** 출판사 <내친구의서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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