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 폴란드에서 온 건반 위의 시인 클래식 클라우드 28
김주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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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공손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버얼써 스물 여덟 번째 인물까지 왔다. 이번에는 음악가들 중 애정해 마지않는 쇼팽. 음악을 듣고 무슨 제목인지는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쇼팽-녹턴은 한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서는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씩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가 열린다. 쇼팽의 피아노 작품만으로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수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을 전 세계에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권위있는 대회. 그 권위를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쇼팽 자신이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은 젤라조바볼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생후 7개월 가량 되었을 때 바르샤바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아달베르트 지브니와 요제프 엘스너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게 된다.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에 감화되어 '고전적' 음악가로 성장했고, 무엇보다 폴란드 시골 사람들의 춤과 노랫가락에 매료된다. 쇼팽의 출생과 생존 당시 폴란드는 전쟁으로 물들어 있었다. 1831년에는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했고, 조국을 뒤로 하고 파리로 향한 쇼팽은 그 곳에서 당대의 문학가, 교양인, 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천재적인 실력을 한껏 드러낸다. 특히 '피아노의 거인'이라 평가받는 프란츠 리스트는 음악적 성향에 있어 대척점에 있었으면서도 쇼팽과 막역한 사이로 지냈으며, 뛰어난 글솜씨로 쇼팽에 대한 최초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예민한 신경과 병약한 몸.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 그런 그를 뒷받침 해 준 사람은 누구보다 소중했던 연인 상드가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쇼팽을 간병하고, 음악회를 앞두기라도 하면 유독 더 예민해지는 그를 객관적이면서도 재치있게 바라봐 준 상드. 그런 상드와 9년 만에 결별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딸 솔랑주 때문이었다. 쇼팽이 재산 문제로 솔랑주와 대립하게 된 상드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솔랑주를 두둔하는 것에, 상드의 오랜 인내심도 바닥났던 것으로 보인다. 남녀관계야 두 사람의 몫이지만, 생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았던 쇼팽의 곁을 상드가 지켜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쇼팽 하면 녹턴을 빼놓을 수 없다. 쇼팽의 이름을 불멸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녹턴인데, 이 녹턴은 아일랜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존 필드가 최로로 설계하고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녹턴은 쇼팽만의 것이라 알고 있었던 나에게 다소 의외의 사실. 저녁과 밤,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쇼팽의 녹턴. 언제 들어도 좋은 최고의 선율이다.

 

 

녹턴과 함께 곡 소개하고 싶은 것은 폴란드 고유의 선율인 '마주르카'다. 쇼팽이 늘 돌아가고자 했던 음악적 고향인 마주르카 리듬은, 쇼팽의 손에 의해서 민속음악의 형태에서 벗어나 쇼팽만의 완벽한 창작물로 재탄생된다. 작곡가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낸 소중한 작품들이지만, 전통적인 춤곡의 '평범함'을 중시하던 폴란드인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평가는 빠르게 바뀌었고 상드로부터는 '마흔 개의 로맨스 소설보다 값어치 있고 100년 동안의 문학 작품 전체 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39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쇼팽. 유언대로 그의 심장은 고국인 폴란드로 보내져 바르샤바의 성십자가성당에 안치되었고, 나머지 유해는 오노레 드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들라크루아 등이 잠들어 있는 페르 라셰즈에 묻혔다. 비록 길지 않은 삶을 살았고 그가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쇼팽의 이름은 수많은 음악가와 그의 팬들, 그리고 불멸의 명곡들을 통해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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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22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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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후원자의 호의로 막대한 유산을 거머쥐게 된 핍. 신사가 되는 교육을 받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갑자기 부유해진 경제상황에 정신 못차리고 흥청망청 사치의 길로 들어선다. 빚은 점점 늘어나고 설상가상으로 누나인 조 가저리 부인은 세상을 떴다. 앞으로 조와 비디를 잘 보살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만 그의 그런 다짐이 부질없다는 것을, 조와 비디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았을까. 미스 해비셤이 후원자이고 사랑하는 에스텔라의 짝으로 자신을 점찍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핍 앞에 드러난 진짜 후원자의 정체!

 

 

이 후원자가 등장하면서 핍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 덕분에 이 자리에 와 있고, 사실은 자신이 어떤 그릇의 사람인지 깨달은 핍은 이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에 성장소설로서의 요소가 엿보인다. 배은망덕하고 흥청망청 돈을 쓰며 향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핍이 자신이 받은 진정한 유산은 돈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짜 '신사'로 거듭나는 것.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용서와 이해, 화해의 순간들이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는, 독자로 하여금 이 [위대한 유산]에서 출생의 비밀, 사랑과 우정, 성공과 야망, 범죄 등 흥미로운 소재 속에서 핍의 성장을 지켜보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인생 속에서 참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신사 혹은 숙녀로 살아가는 길인지 가이드를 제시하는 듯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핍의 행보는 뜻깊었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비디에 대한 감정이었다. 미스 해비셤의 도구로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에스텔라를 여전히 잊지 못하면서, 이제 자신은 새사람으로 거듭났으니 비디와 결혼하여 겸손한 삶을 살아보리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인 것인가! 비디가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비디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핍의 오만함을 보면서 아직 더 커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핍의 인생에 일어났던 한 편의 영화같은 기적. 그 기적을 통해 우리 각자가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필요에 따라 '과거'를 잊기도, 잊어서는 안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미스 해비셤처럼 과거의 그늘에 사로잡혀 현재와 미래까지 포기하지도 말고, 핍처럼 바로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것들로 인해 소중한 과거를 잊어서도 안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존재들이지만,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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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와 은령 탐정사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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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판사인 고엔지 시즈카와 나고야의 안하무인 영감 고즈키 겐타로 영감의 두 번째 콤비 작품집이자, '시즈카 할머니'로는 세 번째인 시리즈가 돌아왔다!! 두 분 다 이미 고령의 연로하신 분들이지만 세간의 염려나 우려와는 상관없이 각기 다른 방면의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묘미를 보여주는 인물들.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에서는 나고야를 무대로 활약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시즈카가 생활하는 도쿄를 중심으로 다섯 편의 사건을 수사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시즈카가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에서 등장한 손녀 마도카를 키우게 된 마음 아픈 경위가 드러나기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다보면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그 섬세함에 놀라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 그의 그런 매력이 유독 도드라진 이야기는 <철제 관>이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를 소재로 한 남성의 교통 사고 경위를 조사하게 된 시즈카와 고즈키 겐타로를 통해, 고령 운전자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이 엿보인다.

 


늙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무언가를 내려놓는 과정이다. 오랜 친구들, 체득한 기술, 지식, 그리고 기억. 본인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소중한 것이 손가락 사이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면허증 반납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p 150

 

현실에서도 고령 운전자들이 사고를 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곤 하는데, 나도 그 때마다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을 제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아직은 건재하다는 자신감으로 누군가를 위험에 빠트리느니 이제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거라고. 냉정한 나의 마음과 그런 나에게 동조해주는 사람들은 고령운전자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자괴감, 슬픔, 허탈함. 고령 운전자들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 그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비합리적이고 불행은 사람을 고르지 않아. 착한 사람에게 재앙이 닥치고 정직한 사람은 손해를 보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비합리에 얽매인 채 살아 봤자 소용없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비합리와 싸우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 계속 정직하게 사는 것, 혹은 자신이 세상보다도 더 비합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


p 280

 

겐타로 영감이 안하무인인 것 같아도 멸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세상의 이치를 몸소 부딪혀 깨달았다는 것에 있다. 책만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세상의 실체 같은 것. 그것을 겪어내고 이겨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만 같다. 자신에게 닥칠 죽음의 방법이 어떻든, 그것마저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 이미 그의 마지막이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 아픈 대사들이 많았지만, 역시 그의 멋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즈카의 옛 동료들이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즈카 자신도 위협을 당하는 이야기, 절망에 빠진 한 남자가 꾸민 복수극, 한 노인의 심상치 않은 죽음 등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시즈카와 겐타로가 투닥투닥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즐겁다. 이미 겐타로와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한 시즈카지만, 부디 이 두 사람의 투샷을 다시 한 번 보는 때가 오기를. 어쩐지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이 시리즈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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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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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님이 극찬하셨다니, 올 여름 놓치면 후회할 스릴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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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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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 한 [핑거스미스]. 영화의 분위기가 어쩐지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부분이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영화 속 이미지가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역시 소설은 영화보다 인물의 내면 묘사도 섬세하고 플롯에서도 탄탄함이 느껴진다. 이번 작품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렇고 소설의 초입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은 '수'라고 불리는 수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젠틀먼과 계획한 음모의 중심에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완독을 하고보니 진정한 주인공은 수가 아니라 바로 모드 릴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에게 억압당하며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던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모드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신병을 앓았던 어머니가 자신을 낳고 사망한 뒤 줄곧 삼촌의 손에 키워진 모드는, 오직 삼촌의 계획과 통제 아래 숨쉴 수 있었던 인물이다. '독특한' 책을 만드는 것에 집착하고, 모드에게 여성으로서 충분히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동을 요구하며 집 안 깊숙이에 파묻혀 살았던 삼촌. 그 삼촌 때문에 모드의 인생도 그렇게 생매장당하고 있었다.

 

 

그런 모드를 유혹해 일확천금을 노리던 젠틀먼과 수, 그리고 그 일당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수는 점차 모드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전해지는 마음, 애틋한 떨림, 은밀한 접촉. 하지만 결국 수는 '자신의 욕망'에 굴복해 모드를 버렸고, 모드 또한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수를 외면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이제 모드는 삼촌과 살았던 저택보다 더한 지옥 속에 있다!

 


 

영화의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이 1부의 마지막 즈음으로 등장해서 - 작가님,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려고 이러시나- 했더니 연달아 등장하는 반전에 책을 들고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났다. 진심으로 놀라서 침이 꼴깍 넘어가고 페이지를 앞뒤로 넘겨보기를 몇 번. 누군가가 읽기에는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는 진행 과정이지만 작가가 묻어놓은 폭탄에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은 누구를 위함이었던가. 사악한 영혼에도 애정은 존재하는가.

 

 

바로 앞에 읽은 [끌림]이 밋밋한 느낌이 있었던 데 반해 [핑거스미스]는 그보다 훨씬 역동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모드의 격렬한 내면과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실력도 탁월하고, 특히 그 시대 정신병원의 실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병을 고치기 위해 전기치료를 한다거나 간호사들의 학대는 지옥이 따로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첫 번째 반전을 맞이하고 나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었던 이야기.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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