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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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본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작가 중 한 명인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을 시작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등 그의 작품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련한 향수같은 것이 느껴진다. 처음 온다 리쿠의 작품이 국내에 알려질 때 그를 향해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문구를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정말 '노스탤지어'로 남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내 책장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작품들.

 

 

내가 기억하는 온다 리쿠에 관한 이미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어쩐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 어쩌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잘 몰랐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을 때만은 메시지에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져서, 이번에는 어떤 내용인지 한 번 들어보자!하는, 소설의 바다에 잠겨 있는 듯한 그 느낌이 무척 좋았었다. 담겨 있는 메시지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그런 작품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 때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는, 그래서 작가의 예전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비하고 기이한 소재를 다룬다는 점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발판을 두고 있다. 물건이나 장소에서 '그것'을 느끼는 산타와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그의 형 다로는 철거되는 장소에 출몰한다는 '스키마와라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존재의 정체를 찾아다닌다. 이른바 사람의 기억 사이에 스며든다는 스키마와라시. 산타를 강하게 부르는 어떤 타일과 그 타일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장면들, 그리고 '스키마와라시'라 생각되는 여름 옷을 입고 곤충채집함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 대체 무슨 조합인가 싶겠지만 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들이 모여 '한여름밤의 꿈'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아이가 어린이에다 여름옷을 입고 있는 건 '일본의 여름'을 나타낸다는 말도 맞잖아. 일본의 고도 성장기, 한창 발전하는 계절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해 여름의 아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식으로 나는 납득했는데."

"그래도 노인이 지혜와 경험을 상징한다면, 아이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도 틀리지 않잖아?"
p 300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작가는 지나간 시대와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지만 여기에 특유의 '노스탤지어'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냈다. 여자아이로 대변되는 과거를 향한 기억은 아쉽고 그리운 것이지만, 그 아이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시공간을 통과해다니는 모습을 통해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서,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언젠가 이 문도 우리는 통과해 갈 것이라고, 모든 것은 지나간 일이 될 것이라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살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는가 하고.

 

 

몽환적이고 신비한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 으스스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장소들이 주는 특유의 음침함. 하지만 [스키마와라시]에서는 그런 으스스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밝음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오싹해지는 장면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밝은 표지와 담담하게 진행되는 문체 때문일까. 누구나 겪을 수 없는 그런 소재를 다루고는 있으나 괴이하다거나 무섭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웠으나, 이것은 이것대로 또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애정하는 작가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로 짜잔! 등장해주어 반갑고 기쁘다.

 

 

**출판사 <내친구의서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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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거울이 될 때 - 옛집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직접 이야기한다. 삶을 기록한다. 앞으로 걸어간다.
안미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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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전해주는 위로와 성찰. 타인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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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거울이 될 때 - 옛집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직접 이야기한다. 삶을 기록한다. 앞으로 걸어간다.
안미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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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일까요. 집과 관련된 운이 나쁘지 않아 집은 저에게 편안한 장소였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성향인지라 방에 들어앉아 꼼지락꼼지락 뭘 하는 것을 좋아했죠. 결혼하기 전에 언젠가는, 제가 방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자 부모님이 방문을 열어보시고는 '대체 뭘 하느냐'하며 궁금해하신 적도 있었어요. 운이 좋아 그 집에 여전히 살고 있는데, 지금은 아이들 장난감 방이 된 예전 제 방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기에 침대가 있었지, 여기에 책상이 있었는데, 그 책상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지나 인생의 중요한 시험 공부는 다 했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즐겁기도 하고 뭔가 뭉클한 것이 가슴 한 쪽에서 솟아오릅니다. 여담이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이 바로 그 책상입니다! 저와 함께 어느 덧 30년을 지내고 있네요.

 

 

집은 특히 여성을 대변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잠깐! 여기에서 여성의 역할을 집안일로 한정 지으려 한다거나, 어째서 집이 여성을 대변하느냐 라며 비난하지는 말아주세요. 그저 그동안 그래왔었다-라는 표현일 뿐이니까요. 가부장제도에 의해 남자가 밖에 나가 일을 하면 집을 쓸고 닦고 돌보는 것은 여성의 몫이지 않았나요.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틈새마다 여성의 한숨과 눈물, 웃음이 가득 차 있던 집이라는 공간. 팬데믹을 맞이해 이제 집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생활장소가 되었죠.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 집에서 할 수 있는 여가를 중점에 두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하루 종일 아이들을 품에 안고 집에서 지내다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와 먹거리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는 요즘입니다. 이런 시기에 출간된 [집이 거울이 될 때]는 집을 소재로 지나간 추억을 마치 옛이야기 들려주듯 조근조근 풀어내고 있습니다. 집과 관련된 가족의 추억, 현재 자신의 생활, 집이라는 것이 가지는 정겨움 같은 것들. 그리고 집을 통해 들여다보는 자기 자신.

 

 

책과 관련된 북토크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는데, 작가님의 '집'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 넘치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아요. 감정이 북받치셨는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전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깊은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면 될 듯 합니다.

 

 

전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여러분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모두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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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 국가는 정당한가
홍일립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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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무사책방>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게 된 마지막 책은 홍일립 작가님의 [국가의 딜레마] 다. 그 누구도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대. 그런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국가라는 조직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는 '국가'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정말 우리는 국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국가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해온 것일까.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국가는 과연 필요한가? 여러가지 질문을 앞에 두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지구상에는 분명 국가같지 않은 국가도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쿠데타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를 보라. 미얀마도 분명 국가이지만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그 누가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의하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원칙을 명시하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척도를 만족시키고 있는 나라는 200여 개의 국가 중 1/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하지도 않는 국가. 작가는 우선 '국가의 기원'으로부터 국가의 실체를 파헤쳐보고자 한다. 원시국가에서부터 시작해 국가의 자연발생설, 자연상태를 곧 전쟁상태라 규정하고 이 전쟁상태를 종식할 유일한 해결책이 국가라 믿은 홉스의 이론과 루소가 제시하는 최초 국가의 단초, 오펜하이머의 늑대국가론, 다윈의 이론을 거쳐 국가주의, 반국가주의,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 작가의 마지막 질문은 '국민은 국가의 주인인가?' 라는 것이었다.

 


 


책에서도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기란 힘들다. '이것만이 옳다!'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을 뿐더러, 국가도 인간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그 개념과 국민이 바라는 국가상에 분명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가의 유일하게 정당한 목적'에 관한 것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평등하게 보호하고,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국가가 갖는 권위의 원천은 오로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동의'에 있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없다.


p 365

 

어쩌면 결국, 국가를 결정짓는 것은 국민이 아닐까. 국민이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올바른 국가의 방향을 고민하고 행동할 때 그 국가의 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국가에 있어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국가의 진화는 상대적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며, 조직체의 정당성을 조금씩 제고하는 과정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처럼 국가는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작가가 던진 국가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끝내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국가를 상대로 우리는 늘 궁금해해야 한다. 지금 이 국가는 정당한가. 읽는 동안에는 쉽게 읽었으나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 쉽게만 느껴지는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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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주 더디에 깨어나는 과정을 거쳐온 만큼, 국가 또한 아주 더디게 진화해갈 것이다. 국가를 정당한 조직으로 만드는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를 도덕적 과제로 남겨져 있다.

p 368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여러 국가관을 살펴보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나온 여정. 여전히 명확한 답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결국 국가를 결정짓는 것은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행동할 때 국가의 색도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렵지 않게 읽었으나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 어렵게 느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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