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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평점 :
아버지를 여읜 마흔 다섯의 실비 샤베르. 어머니는 예전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홀로 남게 된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삶에 대해
무상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누군가의 딸이었던 실비. 말총처럼 푸석푸석한 갈색 머리에 등은 구부정하고 가슴은
납작하다고 자신을 폄하하며 절대 남자의 마음에 들지 못할 거라는 비관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계획한다. 두달 뒤, 그것도 누구나 기쁘고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에!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결정하고 의사 프랑크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평소 자신이 두려워하고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이를테면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다던가, 슈퍼에서 물건을 훔쳐본다든가. 그리고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다든가.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면서도 삶에 대해 그 어떤 집착을 느껴보지 못했던 실비는, 우연히 노숙인 여성의 죽음을 지키게
되면서 자신의 고독에도 안녕을 고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외로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 같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만 같은 고독감. 그것은 설령 옆에 친구나 애인, 남편이나 아내가 있어도 그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 오로지 홀로 고군분투 한 끝에 간신히 그 외로움에서 헤어나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또 고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 속에서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것, 그 어떤 경우에도 삶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존재들의
여부다. 실비는 아버지를 잃었고, 이제 고아가 되었고, 절친인 베로니크가 있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으로 그녀만의 전투에 임하는 중이었다.
철저히 혼자. 그런 쓸쓸함 속에 자살을 생각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두 달의 숙려기간을 준 것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마음의 반증 아니었을까.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으면서 기절을 하고, 슈퍼에서 처음 물건을 훔치느라 긴장에 빠지는 실비의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그녀는 분명 용감한 사람이다. 그 용기로 인해 실비는 멋진 외모도 얻었고, 새 옷도
얻었고, 마음맞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밖으로 나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신을 가둔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정말
어마무시 어렵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인생을 꿈꾼다면, 이 고독과 쓸쓸함과 외로움과 안녕하고 싶다면 탈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죽는 것보다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슈퍼에서 소소하게나마 물건도 훔쳐보고, 평생 꿈도 꿔보지 못했던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게 그래도
쉬울 테니까. 그리고 주위에는 분명, 실비 곁에 로라가 있었듯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둘러싼 얼음을 깨고 햇빛과 비와 눈을
맞아보자. 비록 공기에 미세먼지는 가득 차 있을지라도.
고독은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너를 에워싼 얼음은
깨지기도 쉽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