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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 지옥의 풍경, 요한계시록부터 단테까지 ㅣ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류재화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월
평점 :

<미술문화> 출판사의 '해시태그 아트북' 시리즈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재는 '악마'다. 오싹하고 두려우면서도 어쩐지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존재. 악마가 있는 곳, 있어야 할 곳인 지옥의 풍경을 요한계시록과 단테의 글, 여러 문장들을 바탕으로 구현해 낸 [악마]. 표지의 악마가 내뿜는 강렬한 눈빛에 금방이라도 압도당해버릴 것 같아 도저히 오랫동안 바라보기란 불가능했다. 독일의 상징주의 화가 프란츠 폰 슈트크가 그린 <루시퍼> 속 악마는 거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반짝이고 있는 눈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해버릴 것만 같다. 슈투크는 세기말 사회의 강박과 취향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밤의 검은색과 강렬한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근대적 우울의 여러 변형을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악마가 처음으로 그림에 나타난 시기는 6세기부터이며, 그 이후 서기 1000년까지 그려져 왔다고 전해진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음탕함과 교활함의 대명사인 그리스의 신 '판'을 차용해 뿔이나 꼬리, 갈라진 굽 등으로 묘사된 염소로 나타냈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인간과 반대된 이미지로서 괴물이나 짐승을 닮고 털 달린 모습으로, 12-13세기부터는 타락한 천사를 강조하기 위해 박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악마의 모습부터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전달해 준 악마. 과연 그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그림 관련 책으로는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은 듯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상당하다. 악마를 비유한 표현, 악마를 다룬 문학 등 소소한 팁은 물론, 지도로 알아보는 악마, 악마의 표장, 악마를 상징하는 무엇들에 대한 내용까지, 마치 '악마를 집대성' 해놓은 기분이랄까. 악마가 염소나 뱀, 박쥐 등으로 상징된다는 것은 익숙하지만 돼지나 곰으로 묘사되기도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돼지는 더러움으로, 곰은 폭력과 야수성으로 악마를 상징한다. 시대에 따라 악마를 표현하는 부분도 다르다. 예를 들어 중세의 악마는 염소의 뿔과 털을 단 모습으로 상상되었다면, 근대에는 길게 늘어진 꼬리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표지의 '악마' 만큼이나 내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윌리엄 부게로의 작품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다. 한 악마가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가운데 나체인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현장. 그 장면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상대의 팔을 꺾은 채 목을 물어뜯고 있는 처참한 포즈와 사나운 눈빛에 '이곳이야말로 지옥'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잔인함과 폭력성을 통해 내면에 악마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악마,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내 안에 악마가 있기 때문이다.
샤를 보들레르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선과 악이 한 몸에 자리한다. 진화와 지식의 발달을 겪으면서 인간은 이러한 부조화에 혼란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악한 기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사탄'과 '악마'라는 존재가 탄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 내면의 악마. 그 악마에게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악마에 대한 탐색. 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외침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미술문화>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