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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울컥하는 마음으로, 때때로 엉엉 울며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야기 속 남자들이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치사율 90%, 감염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단 2일. 오직 남성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덮쳤거든요. [엔드 오브 맨] 에서 처음으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아낸 영국 글래스고의 의사 어맨더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둘 있습니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부족하게도 아이는 모두 남자아이. 영국 런던에 사는 캐서린도 남편과 아들 하나가 있죠.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상이 되실까요? 맞아요. 이 여성들은 가족을 모두 잃습니다. 심지어 남은 가족의 전염을 막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벌어져요.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지만, 이렇게 몇 자 적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도 그 상황을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여성들은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저라면 다른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잊지 못해 저도 그들을 따라갔을지도 모르지만, 살아남은 여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 바이러스에 대항해나갈 길을 모색하죠. 어맨더는 물론 캐서린까지도요. 캐서린이 선택한 것은 지금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생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선택을 해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을지에 대해서. 그녀가 <남성대역병 이야기>라는 책을 완성하고 남긴 서문을 읽다 저는 또 끅끅 울었어요.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를 나의 가족에게 바친다. 나의 남편 앤서니, 나의 아들 시어도어, 나의 딸 메이브. 우리는 결코 이번 생에 한 자리에 모일 수 없지만, 그대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기쁘다.
p463
전세계가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명예와 영광을 위해 움직이고, 또 어떤 이는 개인의 이익을 선택한 대가로 엄청난 상황을 초래하지만, 저는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가족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등장인물들이 고통을 느끼지도, 새로운 생명과 만나는 것에 희망을 느끼지도,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또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도 그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결국 작품은 독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현실이 닥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하겠느냐고. 무엇을 지표 삼아 이 생을 계속 이어가겠느냐고.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 쓰여졌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속 상황들이 결코 허구만은 아님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아픔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듯 자만하는 인간들에게 팬데믹은 공포와 더불어 겸손 또한 가르쳐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소중한 것을 잃기 전에 깨닫게 되기를 바라요. 우리 또한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으며 매 순간 우리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요.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 라는 감상밖에 적은 것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닐 겁니다. 저 정말 심각하게 많이 울었거든요. 소중한 아들들과 남편이 오늘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것에 감사하며, 팬데믹이 이제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