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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ㅣ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2년 6월
평점 :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스스로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가족들이 충분히 채워주고 있었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딸, 고등학교에 진학할 아들, 성실한 남편.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쏟아지는 빛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충만한 행복감에 젖어 있던 이즈미. 순간 이런 축복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이지만 단순한 기우라고 여기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하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뒤따른다고. 사람들에게 겸손함을 일깨우는 이 사자성어가 이즈미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납니다.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이즈미를 바라보며 불안한 기분이 들었던 저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거예요/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전국이 한창 들썩이던 그 때, 믿음직한 아들인 다이키가 어째서인지 새벽에 나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려다 사고로 사망, 이즈미를 비롯한 가족의 삶은 무너져요. 완벽한 가정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 전 '완벽하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가족도 사회인 이상 갈등과 미움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다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은 믿습니다. 그래서 이즈미의 절망이 더 마음 깊이 다가왔어요. 믿었던 세상이 무너지는 그런 경험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이즈미의 울부짖음은 그 순간 저의 것이 되었습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페이지를 읽다 책을 덮어야 했을 정도였어요.
작품의 제목인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는 등장인물과 독자들을 향한 질문임과 동시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다이키는 왜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가, 과연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었길래 불심검문하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야 했는가, 그리고 왜 다이키는 죽어야만 했는가. 시간은 흘러 한 여성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15년 전 다이키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이번 사건에서 15년 전의 그림자를 느낀 형사는 '왜 소년은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과거를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이즈미의 절절한 심정은 뒤로 하고, 여느 미스터리 작품과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때, 비밀은 드러나고 진상이 얼굴을 내밉니다. 저는 이 진상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진상 그 자체보다 다이키의 마음 때문에요. 부모가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보이는 것일까요. 아이가 그런 마음을 품었을 때 부모는 어떻게, 무슨 말을 해주고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할까요. 평범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다이키가 괴로워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치 내 아이가 그런 것처럼 마음이 아파요.
저는 사실 제목이 이즈미를 향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순간에, 엄마인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엄마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아들을 잃고 지내온 그 시간들 속에서 분명 이즈미는 수십번, 수천번 되뇌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저도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어떻게 지켜봐야 할 지를요. 생명을 낳고 보살피고 지킨다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 출판사 <모로>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