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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
미나토 가나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2008년 [고백]으로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와 서점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 미나토 가나에. 그 후로도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주요 상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녀지만, 저에게 미나토 가나에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 [고백]입니다. [고백] 의 충격을 잊지 못해 이후 작가의 작품이 발표되는대로 찾아 읽었지만, 처음같은 감동이나 충격은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재미없다-가 아니라, [고백]으로 받은 타격(?)이 그만큼 컸던 탓이겠죠. 주로 복수나 악의로 점철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작품인 [이야기의 끝]을 발표했습니다. 짙은 초록색에 청아해보이는 은방울꽃이 그려진 표지마저도 '이 책은 맑고 깨끗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실린 작품집에서 신호탄을 울린 것은 에미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동네에서 산 너머를 상상하며 자신만의 세상을 그리던 빵집 딸 에미. 생각에 빠져 있는 에미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며 다가온 미치요에게 자신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미치요는 '너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며 노트까지 선물해요. 책을 읽고 이야기를 상상하던 에미는 빵집에 햄 샌드위치와 햄 롤을 사러 오던 남학생과 인연을 맺어 결혼까지 약속합니다. 하지만 에미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는 열망은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떠밀어요. 꿈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 보라고. 서둘러 역으로 향한 에미 앞에 나타난 햄씨.
독특하게도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을 맺습니다. 일반 소설이었다면 에미가 집으로 돌아갔는지, 돌아가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었을지 어떨지 결론을 맺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 그대로 열린 결말로 마무리가 지어진 거죠. 열린 결말을 매우 싫어하는 저로서는 비명을 지를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 읽어보니 이 에미의 이야기가 <하늘 저편>이라는 소설로 여러 사람에게 전달되는 겁니다!! 그렇게 에미의 사연을 접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이라면 어떤 결말을 낼지 생각하며 각자의 인생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출판사의 홍보처럼 핏빛 복수도, 숨막히는 추격전도 없었지만, 저는 한 편의 소설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사연이 너무나 흥미로웠어요.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설사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 해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그런 일들이지 드라마틱한 사건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작가가 선보인 여덟 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이유는 그들이 나 자신, 혹은 우리가 현실 세상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여기에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결말이 제각각이라 여러 버전의 마지막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침내 <하늘 저편>의 실제 결말이 등장하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 또한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읽을 때마다 그런 책 좀 그만 읽으라는 타박을 듣기도 했었고, 제목이 그게 뭐냐는 이유 없는 구박을 들을 때도 있었어요 (제가 책 제목을 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 이야기들을 지을 때는 읽는 사람만큼이나 쓰는 사람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일 듯 한데, [이야기의 끝]을 통해 만난 미나토 가나에는 어딘가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어깨에서 힘을 뺀 작가 자신도 편안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라든지, 혹은 이런 결정은 하지 않을텐데 등등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하늘 저편>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맺었을지,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 <하늘 저편>을 읽고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이야기의 끝'이 궁금하지 않으실까요. 이야기는 끝나고 삶은 또다시 이어집니다.
**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