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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평점 :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의 핫한 소재는 '선행성 기억 상실증'인 걸까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 사이에 같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두 권이나 읽게 되었어요. 특히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장식하는 수식어가 무척 화려합니다. 출간 3개월 만에 10만부 돌파, 2021년외국소설 1위, 온오프라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지금 SNS에서 가장 핫한 소설. 홍보문구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저로서는 약간 과장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게다가 한 줄의 독자리뷰.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라니, 요즘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기에 이거이거,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목석같다 싶을 정도로 감성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저도,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 무거운 소재에 비해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히노 마오리를 위해 가미야 도루가 쌓아올려주는 일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어요. 시작은 짓궂은 장난 때문이었지만 안타까운 마오리의 사연을 알게 된 도루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일상을 새롭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 채워주기 위해 굉장히 노력합니다. 병 때문에 아침마다 깊은 좌절과 허무를 느꼈을 마오리. 주위에 자신의 병이 밝혀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는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도루는, 심지어 그녀를 위해 자신이 진심으로 고백했다는 것, 자신이 그녀의 병을 알고 있다는 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할 정도예요. 어떻게든 마오리의 곁에 있고 싶었던 거죠.
이 가미야 도루라는 캐릭터, 아주 매력적입니다. 비록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하나 뿐인 누나의 행방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그 역시 사연 있는 사람. 그럼에도 어딘가 묘하게 기품 있고 단단한 심지 같은 것이 엿보이는, 흔한 고등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마오리의 곁에 있을 수 없었겠죠. 데이트를 할 때 도시락을 만들어가고, 항상 모든 것이 새로운 마오리를 위해 같은 일도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는 다정한 남자.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어쩔 수 없는' 다정함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마오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다정함에 이끌렸던 게 아닐까요.
내일의 히노도 내가 즐겁게 해줄게.
p 135
문득, 좋아하는 마음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대 소녀도 아니고,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느닷없는 의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의 저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아이들과 즐거우면서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그 안에 아이들이나 옆지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과연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도루의 마오리를 향한 마음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내일의 마오리도 자신이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것.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의무로 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순수한 그 사랑의 마음이 다시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결말에서는 정말, 누구라도 작가님을 원망하게 될 겁니다. 아니,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나, 너무 느닷없는 설정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 진심으로 분노했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련하게 우리 마음 속에 남을 작품. 마치 한 편의 감성 짙은 영화를 본 듯한 기분에 지금도 울컥합니다. 아마도 벚꽃이 내리는 봄이 되면 또 생각날 것 같은 이야기. 여운 깊은 이 러브 스토리, 추천합니다.
**출판사 <모모>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