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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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라는 말은 여러 번 들어보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메트로폴리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고대 도시 '우르크'를 소개하며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워 언젠가 '길가메시 서사시'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하던 참. 마침 영화에서 마블리님이 '길가메시'라는 역할을 맡아서인지 때에 맞춰 여러 출판사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출간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중 현대지성의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부분에서 출판사의 자부심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편역자인 앤드류 조지의 전문성에 깜짝 놀랐다. 1983년부터 런던대학교 수메르/아카드어 교수로 재직했다는데, 그렇다면 훨씬 이전부터 고대 문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거듭해왔다는 의미 아닌가. 그 안에는 물론 개인적인 성취의 기쁨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고대의 서사시를 이렇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쐐기 문자 원판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여 번역하였으며 중간중간 쐐기 문자 판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도 좋았고, 친절하고 구체적인 해제, 고대 근동 지도라든지 리딩 가이드 등의 부수적인 보충 자료도 상당하다. 이런 노력들 덕분이었는지 흔히 접할 수 없는 형식의 글을 읽는데도 그리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듯 하다.

 

책의 구성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인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 판본>은 기원전 10세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표준어였던 아카드어로 되어 있고, 점토판에서 훼손된 부분은 더 오래된 자료를 참조하여 채워져 있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인에게는 '심연을 본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2부 <수메르어 길가메시 시들>은 세계 최초로 수메르어로 된 서사시 5편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다. 수메르어는 친족 언어를 찾기 힘든 인류 최초의 언어라고 하니 저자에 대한 감동과 격려의 마음이 더 깊어지는 듯 하다. 3부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의 구버전 파편들>은 아카드어로 되어 있고 1부보다 더 오래된 자료의 번역본이다. 4부 <다양한 바빌로니아 파편들>에는 기원전 20세기의 아카드어 파편들과 고대 서쪽 지역에서 나온 여러 개의 시 조각들이 포함되어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서로 다른 서너 시기에 서너 가지 언어로, 점토판의 형태로 현재도 활발하게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한다면 현재 접하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최신판이지만, 후에 다른 점토판이 출토되어 내용이 추가된다면 언제든지 '최신판'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

 

길가메시는 초반에 폭정을 휘두루는 왕으로 등장한다. 초야권까지 챙기는 그의 모습에 제목이 '길가메시 서사시'임에도 불구, 처음에는 그가 주인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의 영웅은 그런 폭군이나 악당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의 압제에 못이긴 백성들은 신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신들은 길가메시의 맞수로서 엔키두를 만들어낸다. 야생동물들에 의해 길러진 엔키두는 덫 사냥꾼과 매춘부에 의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길가메시와 맞서 싸운다. 길가메시의 우월함을 인정한 엔키두와 길가메시는 친구가 되어 삼나무 숲을 지키는 신인 훔바바와 대결해 승리하지만, 신들의 계획으로 엔키두는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른다.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길가메시는 자신도 언젠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영생을 얻은 우타나피쉬티를 만나 그 비결을 얻고자 한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인은 어째서 길가메시를 '심연을 본 사람'이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죽음의 여정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영생의 비결을 알기 위해 우타나피쉬티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그가 건너는 '죽음의 물'은 지하의 강을 가리킨 것은 아니었을지. 길가메시가 얻은 불로초를 뱀에게 빼앗기는 장면은,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결국 인간인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고대의 사람들 또한 현대의 우리들과 다름없이 생과 사를 고민하며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와 의미있는 인생에 대해 숙고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시의 운율을 느낄 수 있었던 1부와 3부를 읽고 있자니 마치 고대인들이 집단으로 부르는 노래가 들리는 듯 하다. 시라는 것은 원래 노래이기도 하니까. 어쩐지 그들이 어떤 의식이나 제의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올라 그 엄숙함과 신비함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직접 경험해볼 수 없는 그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길가메시 서사시]. 앞으로 출토될 점토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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