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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왕릉실록
이규원 지음 / 글로세움 / 2021년 12월
평점 :

역사 시간 초반에 배워서 기억에 잘 남을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매우 인상적이지 않은 부분이 어쩌면 삼국시대일지도 모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얽히고 설켜 이루어냈던 그 시간들은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재미있고 풍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으나, 우리가 수업 시간에 접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그 당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사료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따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몰랐을 고대 국가의 매력. 저도 이번에 공부하면서 새롭게 느껴보았는데요, 덕분에 [삼국왕릉실록]이라는 멋진 책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삼국의 역사를 '왕릉'을 중심에 두고 되짚어갑니다. 신라는 BC57년 박혁거세가 건국한 이래 56명의 왕이 992년 동안 왕권을 유지했다고 해요. 세계 왕조사에도 드물었다는 천년 왕조. 신라 임금 56명 중 묘호가 비정된 왕릉 수는 37기에 이르는데요, 36기는 경주에 있고 1기는 경기도 연천에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백제, 가야 왕릉은 멸실돼 3-4기만 전해져 올 뿐이라니, 벌써 뭔가 마음이 찌르르한 기분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신라 역사를 중심으로 [삼국왕릉실록]이 집필되었다는 이야기.
신라인의 내세관에 대해서는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살짝 알고 있었는데요, 그들은 죽음 너머의 저승 세계를 현실 세상과 동일하게 인식하며 살았다고 전해져요. 불교가 전래되기 전까지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신봉했던 한민족. 불교가 전해지면서 윤회 왕생 사상은 전쟁이 한창이었던 삼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사료가 빈약한 고대사 영역의 빈틈을 메꿔주는 역할을 하는 무덤 발굴. '능'이나 '총', 분'과 '묘'등 호칭 구분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임금이나 정실 왕비의 무덤은 '능',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으로 대표되는 고총의 준말은 '총', 고분이라고도 하며 피장자를 모르는 옛 무덤은 '분' 등 일단 용어 확인부터 하고 책을 읽으면 뭔가 고대사와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신라 1대 박혁거세 거서간과 고구려 1대 동명성왕, 백제 1대 온조왕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세계 최초 수중릉으로 유명하다는 신라 30대 문무왕까지 '왕릉'을 통해 들여다보는 삼국의 역사입니다. 저는 목차를 보다가 마지막으로 소개된 신라 30대 문무왕부터 살펴봤어요. 세계 최초 수중릉이라니, 그 연유가 궁금해서 말이쥬. 시신 자체가 바닷속에 묻혀 있는가 싶었는데, 이 때는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지 153년 째로 화장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해요.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유골을 수습해 동해의 수중 바위 안에 안치한 것이죠. 왕이 수장된 바위를 대왕암 또는 문무대왕 수중릉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죽은 후 용이 되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왕의 무덤.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한 번 보러 가고 싶습니다.
'왕릉'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령왕릉'일 겁니다. 1971년 7월 8일, 유난히 더웠다는 여름, 침수 방지를 위한 송산리고분군의 배수작업 도중 그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됩니다.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108종, 2,906점에 달해 국내를 비롯한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죠. 왕릉 연도 입구의 지석을 통해 피장자 신분과 축조 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최초의 왕릉이었습니다. 저도 한 번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이리 책을 읽으니 자세히 한 번 더 보러 가고 싶어집니다.
왕릉 자체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왕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 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의 국내와 해외 정세 등도 실려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없이 왕릉을 찾아다니고, 수많은 자료를 찾아봤을 저자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상대국 간 역사 논쟁에서 밀리면 영토 수호의 명분을 상실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고대사를 굳건히 정립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 책이었어요.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글로세움>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