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가문 메디치 1 -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
마테오 스트루쿨 지음, 이현경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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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렌체의 유력 가문인 메디치가의 코시모.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건축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중 동생 로렌초가 급히 달려와 아버지 조반니 데 메디치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가문의 수장이자 두 형제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단순한 열병으로 쓰러진 줄 알았건만 동생 로렌초는 코시모에게 아버지가 독살당했음을 넌지시 알린다. 자신들의 집에서 발견한 벨라돈나. 보통은 들판에서 자라지만 종종 오래된 폐허 근처에서 자라는데 어째서 집에서 발견된 것인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 뒤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한 형제는 그 배후를 밝혀내고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그 와중에 불길한 향수장수 라우라와 그녀를 사랑하는 슈바르츠와 맞닥뜨린다. 조반니 데 메디치의 죽음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던 리날도 델리 알비치. 조반니 데 메디치의 죽음을 기회로 그는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에서 몰아내려 하고 결국 코시모는 여러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추방령을 당해 로렌초와 함께 베네치아로 귀향을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더욱 공고해지는 그의 위치. 결국 '피렌체의 국부'라 불리며 다시 돌아온 코시모는 리날도 데 알비치와의 일전을 준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이탈리아 작가 마테오 스트루쿨은 1편에 등장하는 코시모와 그의 손자 로렌초, 프랑스 왕가로 시집간 카테리나 메디치의 이야기를 다룬 [권력의 가문 메디치] 3부작을 집필, 이탈리아 서점 대상 <반카렐라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에서만 50만 부가 팔렸으며 전 세계 11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2년 동안의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현지탐방을 한 끝에 집필했고, 역사적 사실과 서스펜스가 적절히 혼합되어 지적 자극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이야기들.

 

막대한 부를 배경으로 피렌체의 권력까지 장악했던 코시모 메디치. 그는 수완 좋은 정치가이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와 정치감각으로 은행을 운용했고, 유럽의 많은 군주들이 그의 은행을 이용해 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는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코시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에서는 정치가로서의 그의 뛰어난 수완이 그리 부각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강인한 심지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고 호전적이라기보다 기회주의자에 더 가까운 면모랄까. 그에 비하면 동생 로렌초는 코시모에 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성정으로 오히려 그가 전투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었지만 초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무슨 용어가 이리도 어렵고 복잡한 지, 읽는 도중 솔직히 잠이 조금 쏟아지기도. 하지만 이 용어들과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주인공 코시모의 모습도 눈여겨보기는 했지만 내 눈에 더 들어온 것은 그의 어머니 피카르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컸을텐데 오래 내색하지 않은 채 가문의 앞날을 위해 단호한 여장부다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마시는 차 몇 모금. 죽음 앞에서 어찌 그리 담담하고 초연할 수 있는지,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또 한 여성은 불길한 향수장수 라우라. 그녀는 메디치 가문과 적대관계에 있는 리날도 델 알비치에게 종속된 수하이자 성적으로 희롱당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어째서인지 병적으로 메디치 가문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라우라. 그녀의 성장배경을 따라가다보면 어쩌면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어 무서우면서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메디치'라는 말만 들어봤지 그 안의 깊은 내용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터라 두 번째 이야기인 로렌초는 코시모의 동생 로렌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로렌초. 냐하하. 개인적으로 카테리나의 이야기가 더 끌리지만 일단 로렌초의 이야기부터 읽어볼까나.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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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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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엄마가 자살을 선택했다.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등질 줄 누가 알았을까. 저자는 엄마가 입원해있던 병원의 의사가 자살할지도 모르니 잘 살펴봐야 한다는 충고와 엄마의 죽고 싶다는 말을 무시했던 자신의 과거를 탓하며 이제 엄마가 없는 세상에 남겨진다. 그래도 남은 이는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책도 쓰고 강연회도 열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여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도 찾아온 우울증과 불안장애. 엄마도 이런 시간을 보냈겠지. 이 외롭고 험한 시간을 걸어오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 걱정이었던 엄마를 생각하며 쓴 그녀에 대한 기록들.

 

첫장부터 충격이었다. 보통 엄마를 생각하며 쓴 에세이들 중에는 노환이나 병, 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엄마'인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남겨진 아들의 사모곡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형이 먼저 앓았던 우울증과 조현병. 어렸을 때는 엄마의 기쁨이었고 기대를 한몸에 안았던 형은 취업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몇 번. 결국 우울증으로 집에 틀어박힌 생활이 시작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생각하니 절로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의 병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단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가 떠올랐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인 나를 생각했다. 아이들 모두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첫 아이인 큰아들의 병은 엄마를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리라. 만약 우리 아이가 그렇다면 나의 삶 또한 피폐해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그가 내린 결정에 어떤 의견도 내놓을 수 없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겠다, 고 결심해본다. 큰아이도 소중하지만 작은 아이도 소중하니까. 내가 내린 선택으로 남겨진 그 아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져서도 안 되고, 이 책을 통해 '자살'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 지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의 엄마도 자신이 떠난 후 작은 아들 도윤이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로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엄마이면서 어엿한 '나' 한 사람으로 살아가련다. 아이들은 오롯이 '엄마'이지 않은 나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더 건강한 삶일 것이다. 자식들만 바라보지 않는 인생,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삶. 그래서 만약,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만약이지만,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내가 힘을 내서 주위 사람을 격려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작가님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자신은 엄마에게 못해준 것만 떠올라 괴롭고 힘들겠지만, 엄마에게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자식이 건강하게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므로 더 이상 자책하지 말고 엄마의 좋은 모습만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엄마인 내가,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였을 도윤이의 어머님이 바라는 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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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여행자
무라야마 사키.게미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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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로 알게 된 작가 무라야마 사키. 세 가지 단편과 함께 화려하게 수놓아진 일러스트 작품집으로 다시 만났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일러스트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 소미미디어의 책 중 유독 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품들의 표지가 있는데 [봄의 여행자]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봄나들이를 나가는 듯 가슴이 울렁울렁해온다.

총 세 편의 단편 중 첫 작품은 <꽃게릴라의 밤>. 하숙집을 하는 주인공 소녀 리나의 집에는 대학교에서 식물을 키우고 늘리는 공부를 하는 사유리 언니가 있다. 녹음으로 가득한 방만큼 그녀를 잘 나타내는 게 또 있을까. 그녀는 공원이나 공터나 남의 집 정원 같은 곳에 몰래 꽃씨를 뿌리거나 알뿌리를 심거나 하는 '꽃게릴라'다. 계절이 바뀌면 싹이 트고 꽃이 피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꽃게릴라의 즐거움. 그런 그녀도 얼마 있으면 다른 곳으로 공부하러 떠난다. 사유리를 동경해왔던 리나는 같은 반 친구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모른 척 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한다. 사유리 언니였다면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 자신도 사유리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리나에게 사유리가 조언한다.

리나,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 사람에게 덧씌워 보곤 해.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공상의, 환상의 모습을 동경하는 거야......누군가를 동경하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그 사람을, 그 환상 속의 모습을 앞질러 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p22-23

표제작인 <봄의 여행자>는 지구에서 태어난 거북이가 여행을 마치고 51년만에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51년 전 전쟁이 한창인 폐허 속을 찾아온 거북이의 산란과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고, 새끼 거북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유원지의 할아버지. 그로부터 51년이 지나 별의 바다를 건너올 새끼 거북이들을 기다린다는 내용은 그 일이 정말 일어났었는지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한 편의 동화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인 <또그르르>는 시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비교적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색깔과 맛 등에 대한 선명한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이 단편은 특히나 내용보다 일러스트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특히 애정하는 밤벚꽃의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책 속에서 봄의 향기를 느꼈다. 바이러스로 인해 충분히 봄을 즐기지 못했던 올해. 책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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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키퍼
톤코하우스 지음, 유소명 옮김, 에릭 오 감수 / ㈜소미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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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찾아온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풍차를 돌려요]

                          

츠츠미 다이스케와 로버트 콘도가 만나 탄생한 톤코하우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어 픽사에서 아트디렉터로서 활동하며

스스로 각본을 쓰고 독립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첫 감독영화 <댐키퍼>는 세계 여러나라의 국제영화제에서 2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고

2015년 미국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해요.

                             

그 유명하다는 <댐키퍼>를 그림책으로 만났습니다.

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피그.

                              

피그는 댐 건너편에 있는 어두움을 풍차를 돌려 막아내는 '댐키퍼'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피그가 댐키퍼라는 것을 모른 채

댐에서 일하느라 더러워진 그를 '흙투성이'라고 놀릴 뿐이죠.

친구도 없이 늘 혼자인 피그.

                         

그런 피그에게 친구가 생겼어요!

새학기가 되어 전학 온 폭스는 그림을 잘 그리는 조금 특이한 여자애로,

짓궂은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피그를 도와주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 더미에 피그를 괴롭혔던 아이들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폭스.

피그도 크레용을 쥐고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폭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내일도 그림을 그리자고 약속하고 헤어진 피그와 폭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서 폭스는 그림을 보며 아이들과 웃고 있었어요.

그림 속 주인공은 지저분하고 흙투성이인 피그!

 

충격을 받은 피그는 자리를 피하고

실의에 빠져 그만 풍차를 돌리는 것까지 깜빡하고 말아요.

그 사이 어둠이 몰려옵니다.

 

있는 힘껏 달려가 풍차를 돌려 또다시 어둠을 몰아낸 피그.

                            

앞이 보이지 않던 깜깜한 마을에 환한 빛이 돌아왔어요.

                                

구겨버렸던 그림을 펼쳐보고 오해를 푼 피그.

종이에는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걸까요.

 

폭스와 피그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댐키퍼]는 주인공 피그의 성장을 그려내는 이야기이자

우리의 마음 속 어둠을 생각해보게 하는 동화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둠'에 잠식당할 때가 있어요.

그 '어둠'을 물리쳐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사랑, 우정,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하나쯤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한 가지.

설사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피그처럼 포기하지 않고 마음 속 풍차를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라고 포기하지 말아요.

 

분명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곁에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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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박지은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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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파묻힌 거짓말]에서 조카 벨이 납치당했다 풀려나고, 벨의 조부모가 화재사고를 빙자해 살해당하면서 루시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 마틴 베너. 루시퍼의 조건은 자신의 아들 미오를 찾아내라는 것. 마약조직의 보스로 창녀이자 애인이었던 사라가 임신한 채 자신에게서 도망치자, 결국 끝까지 찾아내 살인죄를 덮어씌우고 자살하게 만든 루시퍼는, 이번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마틴을 괴롭힌다. 사라의 친구 제니와 오빠 바비를 살해한 혐의, 바비 대신 마틴을 찾아와 사라 일에 대해 의뢰한 엘리아스와 마틴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단 한 사람인 기자였던 프레드릭까지 살해한 혐의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마틴. 게다가 과거의 기억은 그를 악몽으로 몰아넣은 채 단 한 순간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제 그 과거는 족쇄가 되어 길고 긴 여정의 끝에서 어둠의 정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는데, 과연 마틴은 이 함정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파묻힌 거짓말]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전작을 읽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작품 앞쪽에 [파묻힌 거짓말]의 요약본이 실려 있어 대략의 개요는 파악할 수 있었으나 책을 읽는 내내 어딘가 퍼즐이 하나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늪에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마틴의 모습에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엿보이고 그것은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순간의 판단과 오해가 불러온 현재의 비극을 생각하면 과연 운명이란 존재하는가 진지하게 되물어보게 된다.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선택들. 그 선택이 만들어낸 현재의 상황.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본 인간의 운명을 통해,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의미없이 소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양파 껍질을 까는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작품이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틴과 독자를 놀라게 할 이야기, 전혀 생각도 못한 내용들이 계속 밝혀진다. 마틴조차 자신의 앞날을 가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3자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아무 연관도 없는 나의 가슴이 두방망이질쳤다. 만일 나의 인생에서 이런 덫이 계속 나타난다면, 나는 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사탄의 편에 서게 되면 그 자신도 사탄이 되고 마는 것인가. 그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형사 디드릭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임에 틀림없다.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고독과 차분함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그 어둠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 마틴이 철저히 혼자는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 지, 마틴 베너의 다른 시간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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