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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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6주 여정이 마침내 끝났다. 마지막 5권의 내용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특히 '들어가는 말'이 무척 감동적이었는데, 저자는 자신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필하게 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진솔히 고백한다. 인생에서 특히,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삶에서 그 어떤 고난을 만나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아손은 1권에서도 등장했었다. 이올코스 나라의 왕은 노쇠한 데다 그의 아들 이아손은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였던 지라 결국 왕의 이복 아우인 펠리아스가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후에 이아손이 장성하면 다시 왕좌를 내놓겠노라 약조하지만, 노쇠한 왕은 혹여 자신의 아들이 이복 아우에게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이아손을 펠리온산의 현자라고 불리는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보낸다. 그 후 15년이 지나 펠리온산에서 내려온 이아손. 이올코스 나라로 들어가려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노파로 변신한 헤라 여신을 만나게 된다. 모노산달로스, 외짝신의 주인공이 된 이아손은 펠리아스를 찾아가 당당히 왕좌를 요구하고, 여기서 짐작 가능하겠지만, 펠리아스는 그에게 왕의 자질을 시험해보겠다는 명목 하에 콜키스에 있는 프릭소스의 '금양모피'를 찾아와줄 것을 명령한다. 아무 군소리 없이 그의 명을 받아들인 이아손. 이에 원정대가 꾸려진다.

 

배 짓는 명장 아르고스에 의해 만들어진 아르고호. 그가 배를 만들고 있을 동안 이아손은 온 그리스 땅 곳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당시 한다하는 영웅들은 다 모셔오게 했다. 여기에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제우스 신의 아들들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북풍의 두 아들 칼라이스와 제토스, 새 우는 소리에서 운명의 발소리를 듣는 예언자 몹소스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로 뱃길을 짐작하는 암피아라오스, 천리안의 망꾼 륀케우스와 밤에 보아둔 별자리로 낮의 뱃길을 짐작하는 천부적인 뱃사람 나우폴리오스,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둔갑의 도사인 페리클뤼메노스, 여걸 아탈란테와 동성인 헤라클레스를 사늘로 알고 떠받들었던 나약한 미소년 휠라스까지. 후에 트로이아 전쟁의 명장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는 펠리우스도 아르고호에 탑승한다. 그리고 마침내 길을 떠나는 영웅들. 항해는 시작되었고, 여러가지 모험을 겪은 뒤 그들은 마침내 콜키스에 당도해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금양모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후에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테세우스와 메데이아가 나중에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지에 대해 다룬 뒷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6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밤을 신화와 함께 보냈다. 1권의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2권의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3권의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4권의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까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어린 시절 이후로 신화에 이리 깊이 빠져들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당연히 저자 이윤기님이 생존해 계실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미 타계하신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순간 망연자실했다.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테지만, 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저자 이윤기님의 열정의 산물이다. 심지어 나에게는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서마저 그 열의가 느껴졌는데, 이리 그 분의 영면을 알게 되고 나니 새삼 5권의 '들어가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평생을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 그 분이 남기신 이 기록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영광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읽어볼 내 마음 속 신화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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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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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다쿠미와 아내 레이코의 아들 도키오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차례차례 죽어버리는 병으로, 십대 중반까지는 아무런 징후도 나타나지 않지만 그 시기를 경계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먼저 운동신경을 서서히 잃게 된다.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장기 기능도 저하되면서 누워 보내는 생활이 2,3년 지속되다가 의식 장애가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의식을 완전히 잃고, 조만간 뇌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괴로움 속에서, 다쿠미는 문득 기억의 한 조각 속에서 아주 오래 전 '도키오'를 만났던 일을 레이코에게 털어놓는다. 지금 도키오는 스물세 살의 자신을 만나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크게 한 방을 노릴 뿐 성실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스물세 살의 미야모토 다쿠미 앞에 정체 불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을 도키오라고 밝힌 그는, 일단 자신과 다쿠미가 친척관계라고 하면서 가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사귀고 있던 지즈루가 어떤 경비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달라고 부탁하고, 다쿠미는 마지못해 면접을 보러 가지만 또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벌컥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지즈루에게 변명하기 위해 도키오와 함께 지즈루의 집에 찾아간 다쿠미를 맞이한 것은, 그녀가 떠난 텅 비어버린 방. 지즈루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던 술집으로 가보지만,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고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한 남자와 오사카로 떠난 듯한 지즈루.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평소 근성없고 불성실한 다쿠미지만, 어째서인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도키오로 인해 지즈루를 찾아나서는데!

 

한편 다쿠미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사실 그는 미야모토 집안의 양자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친모인 도조 스미코가 가끔 미야모토 집에 방문해 그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혼자 다쿠미를 낳아 키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결국 아들을 양자로 보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알려온 것은, 스미코가 재혼해 들어간 집의 의붓딸이었다. 결코 가지 않으리라 결심한 다쿠미에게, '나중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는 말을 남기는 도키오다. 지즈루를 찾으러 가는 도중, 다쿠미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키오가 나타난 이후 어쩐 일인지 그의 말에 휘둘리는 것 같은 다쿠미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의젓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그가 싫지 않다. 도키오가 없었다면 친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도, 지즈루를 찾는 데 그리 열성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키오를 만나 인생의 한 계단을 도약해 성숙한 어른으로 변모해가는 다쿠미는, '나는 당신 아들이야. 당신을 만나러 미래에서 왔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결국 태어난 아들에게 도키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결말.

 

언젠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백하게 결심하는 다쿠미는, 그렇게라도 해서 도키오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리라.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준 그를. 만약 내가 다쿠미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이자 아들이었으니까. 미스터리 제왕의 면모 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 따스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멋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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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3
캠벨 프라이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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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꿈은!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 멋진 파라오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면 이게 웬일인가 싶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나일 강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아직도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순정소설을 읽었다. 그 때 처음 순정소설, 순정만화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는데, 고고학도인 한 소녀가, 파라오의 무덤을 발굴하는 데 경제적인 조력을 하는 오빠(음청 부잣집 딸래미) 로 인해 깨어난 미라에게 저주를 받아 3천년 전의 이집트로 가게 된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나일의 딸이어야만 가질 수 있는 금발의 이 소녀에게 반한 소년왕! 결국 소녀는 현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파라오의 왕비가 되어 그와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 그 파라오의 이름은 심지어 람세스였던 것이다! 그 뒤 이 내용에 홀딱 반한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이집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고고학과에 가서 상형문자도 배우고 방법을 찾다보면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꿈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꽤 진지했었다. 덕분에 이집트라는 나라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열정의 시간들이 지나간 후 한동안 이집트 관련 책은 읽지 않았었는데 또 이리 제목부터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책이라니,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앞서 읽은 [고대 그리스] 책과 같이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고대 이집트의 약 200가지 이상의 유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하고 서로 뒤엉킨 신앙들과 관습의 산물들. '제대로 되어' 보이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장인들은 동일한 시각적 언어에 의지했고, 그 후 3천년 간은 수많은 모티프의 표현 방식이 대체로 고착되었다. 특별한 문화적 영속성. 극단적 보수주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이집트 내에서 일어난 혁신은 물론 경계 바깥에서 온 영향력에도 모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고대 이집트 유물은 수집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유물의 발굴과 관련된 내용, 실제로 살아남은 유적들이 처했던 환경, 대다수 박물관의 소장품이 사회의 죽은 자와 가장 부유했던 자를 과잉 대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이어 마침내 200여 점의 유물이 그 찬란한 매력을 뽐낸다. 연대에 따라 일곱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와는 또 별개로 가정에서 이용한 물품이나 장식물, 국가 및 파라오에 관계된 유물, 종교적 실천과 관련된 유물, 죽음 및 사후 세계와 관련된 유물 같은 테마로 한데 모아져 있기도 하다.

 

책에 실린 유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함과 경외감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아주 먼 옛날, 그 옛날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구나, 자신들의 기록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재미로 책을 찾아보는 데 그쳐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유물을 통해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컸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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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뉴욕공공도서관 지음, 배리 블리트 그림,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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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정리카드에 작성된 오래된 질문지 가운데 추려 모은 다양한 질문들. 카드 각 장에 적힌 날짜로 미루어 작성 시기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 사이로 짐작된다고 한다. 몇 해 전 도서관의 어느 직원이 자그마한 회색 파일상자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시대상과 그날그날의 구체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질문, 도서관 사이트에 올라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1895년 뉴욕공공도서관이 문을 연 이래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답을 찾으러 찾아오는 곳. 그 중에서도 엉뚱하다고 여겨지는 질문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첫 질문부터 '엥?'스럽다. 빈대가 등장하는 책 제목을 알고 싶다는 질문. 대체 무슨 경위로, 왜 빈대가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 알고 싶었는지 나와 있지 않아 더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이 질문에 응답자는 매우 성실히 답을 들려준다. '이혼하러 혼자 리노에 가는 건 부적절한 행동인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당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질문자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도서관에 이런 질문을 했겠는가 싶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유의 여신상 아랫부분에 쓰여 있는 것은 무슨 시인가'를 물었던 질문 덕분에 나 또한 여기에 적힌 시를 알게 되었다. 엠마 라자루스가 1883년에 지은 소네트 <새로운 거인상>의 구절로 이민자의 역경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내게 보내라.

지치고 가난한 이들을,

자유에 목마른 웅크린 무리를,

풍요로운 기슭에서 내쳐진 이들을,

내게 보내라.

풍파에 시달려 갈곳 없는 이들을,

황금의 문 옆에 내 등불을 들리니!

p14

수박 한 통에는 씨가 몇 개나 들어있나 라는 질문, 집에서 문어를 기를 수 있는지와 같은 생활 속에서 궁금증을 느낄 법한 질문이 있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기계장치를 작동하는 데 총 몇 마력이 필요했겠는가'를 묻는 제법 학구적인 질문도 담겨 있다. 몇몇 질문은 나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이를 테면 '피그와 포크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랑새는 몇 시에 노래하는가', '뉴욕 어디에 가면 금덩어리를 얻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게다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가 모두 같은 사람인지 묻는 질문도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답이다. 우문현답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질문에도 뉴욕공공도서관의 직원들은 성의껏 대답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참고문헌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견해를 기술하기도 하며 재치가 곁들여진 지적인 답변을 보내며 단 하나의 질문도 무시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답 속에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보물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떤 엉뚱하고 의아한 질문들이 실려 있는지, 사서들의 매력적인 대답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재미와 웃음과, 더불어 알찬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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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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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매트와의 별거로 괴로워하던 앨리슨은 친구들의 부추김과 한 순간의 호기심으로 클럽으로 향한다. 그리고 눈을 뜬 다음날. 상처투성이로 깨어난 앨리슨은 전날 밤 일이 기억나지 않음을 깨닫고, 욕실의 거울을 본 순간 더 심각한 일이 자신에게 닥쳤음을 알게 된다. 머리에 난 상처로 후천적인 안면인식장애를 얻게 된 앨리슨은 자신의 얼굴조차 낯선 여자로 보여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그런 그녀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협박장. 점점 그녀의 숨통을 조여오는 이 낯선 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얼굴조차 시시각각 달라보이는 이 상황 속에서 앨리슨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사람의 얼굴을 못알아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심지어 자신의 얼굴조차 낯선 여자의 그것으로 보인다면. 게다가 그 얼굴도 일정하지 않다. 볼 때마다 달라보이는 얼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 급기야 협박메모와 기이한 위협이 시작된다면. 소설임에도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읽는 내내 입이 바짝바짝 마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 번 만난 남자와의 만남 후 상처가 생겼다는 것만도 충격적인데, 이런 분위기에 안면인식장애라니 정말 긴장감 최고. 여기에 의심스러운 인물은 한 둘이 아니다. 룸메이트이자 함께 클럽에 갔던 크리시는 실종 상태에, 옆집에 사는 친구 줄리아와 그녀의 사촌동생 제임스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 게다가 매트는 또 어떻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그에게는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인가. 또한 밝혀지는 앨리슨과 그녀의 동생 벤의 비극적인 과거. 앨리슨을 협박하는 사람은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가.

 

읽는동안 최고의 긴장감을 느꼈지만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공감이 잘 안돼 그 긴장감이 살짝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 상황. 앨리슨이 과거에 저지른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지 몰라도,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것도 그가! 어쩌면 일이 그렇게 된 데는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알린 그 사람의 잘못이 크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표지가 너무 노골적이라 책을 읽기 전에는 조금 촌스럽다 여기기도 했지만 범인의 정체를 제외하고는 스릴러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흥미로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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