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카미유 피사로 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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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 나도 이상하게 가을이 오면 시에 끌린다. 대개는 가을보다 봄을 타는 성향인데 봄에는 놀러나가고 싶어서 가슴이 벌렁벌렁, 엉덩이도 들썩들썩하는 와중에 마음이 싱숭생숭.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갑자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같은 심정이 되어, 이 넓디 넓은 지구상에 나 혼자 살아있는 것만 같은 고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은 즐겨읽는 추미스도 아니요, 요즘 푹 빠져있는 고전도 아니고, 시다. 마음이 힘들 때 생각나는 것은 역시, 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중 한 편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몇 월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시와 어울리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는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다. 이번에 만난 시화집은 특히 의미가 깊은데, 그 이유는 <가을>을 소재로 했다는 점, 윤동주님의 시를 비롯 34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여기에 카미유 피사로와 빈센트 반 고흐,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림에 누구의 작품인지 나와있지 않다는 것!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야 알아볼 수 있지만 다른 두 작가의 그림은 무엇이 누구의 작품인 것인가 이리보고 저리봐도 당췌 모르겠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째 윤동주님의 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에 참 잘 어울리면서도, 가라앉은 마음을 한층 더 가라앉게 만든다. <별 헤는 밤>처럼 깊어가는 가을밤과 이토록 잘 어울리는 시가 또 있을까. 그리고 가을, 하면 역시 사랑. 김소월님의 <먼 후일>을 참으로 오랜만에 읊조려본다.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저녁달 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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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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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자신들은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딸들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다'고 인터뷰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왕자가 구출하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운명을 남자의 손에 맡기는 여성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을 뿐더러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운동이 격렬히 일어나는 요즘, 이제는 작은 소재 하나에도 여성의 태도와 삶의 방식에 대해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데 이런 기준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것은 차치하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인 위치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 번쯤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프랑스 작가 피에레트 플뢰티오는 [여왕의 변신]을 통해 페로의 동화 속 여성들의 모습을 각색해서 보여준다. [엄지동자]에서 작가를 사로잡은 <식인귀의 아내>를 비롯, <신데렐로>,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하나>,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 <잠자는 숲속의 왕비>, <일곱 여자 거인>, 마지막으로 작가 내면에서 창조된 <여왕의 궁궐>까지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 이야기인 <식인귀의 아내>는 사실 당황스러웠다. 잔혹한 묘사들과 잠자리에서 아내를 거칠게 대하는 식인귀의 모습,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마저 순진무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피에 굶주린 마귀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식인귀의 아내가 변화해가는 모습 그 자체다. 이야기의 초반에서 '살코기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식인귀처럼 살코기를 먹는 대신 모두가 잠든 한밤 중에 채소들로 자신만의 만찬 시간을 가지면서 작은 저항의 모습을 보인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식인귀의 아내는, 물론 매우 슬퍼하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식인귀의 장화를 신은 채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엄자동자에게 '내가 원하는 건 너'라고 당차게 요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여성의 자유. 설사 그것이 가족이더라도 올바르지 않은 형태의 관계라면 떨치고 나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여성의 모습을 가장 찾기 쉬운 것은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남편이 아예 없었던 어머니, 남편이 여럿 있었던 할머니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들이 아이에게 만들어준 빨간 바지가 너무나 잘 어울려 '빨간 바지'라 불린 이들의 여자아이는, 모험가였던 할머니와 기지 넘치는 어머니에 의해 힘도 세지고 지혜도 많아졌다. 게다가 이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늑대를 길들이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그리하여 동화 속에 등장했던 잔인한 푸른 수염을 길들이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푸른 수염이 지하 벽장에 가둬두었던 여성들은, 아주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덕분에 자신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급기야 '여자들이 행복하기 위해 남자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될 수 없다는 조언.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개인마다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결코 남자 하나인 것만은 아니리.

 

[백설공주]를 각색한 <일곱 여자 거인> 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백설공주 역할로 등장한 한 왕비가 아니라 그녀를 위기에서 구원해 준 '여섯 여자 거인'이다. 몹집이 크고 힘이 센 '거대한 유방', 손이 가죽처럼 거친 '예쁜 티눈', 머리를 빡빡 민 '대포알', 눈빛이 너무나 형형한 '화염방사기', 천둥같은 목소리를 지녀 야수들을 달아나게 하고 길 잃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트럼펫', 그리고 마지막 '색녀'. 여섯 여자 거인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여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거인에게는 그것을 비하하는 듯한 이름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거인에게는 그 점을 조롱하는 듯한 거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여성 거인들이 왕비를 죽이러 온 병사들을 막강한 힘으로 모두 제압한다. 게다가 '색녀'는 마지막에는 국회에 진출해 열심히 정치하는 모습으로 기술된다.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부당한) 여성성과 그런 여성성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을 향한 멸시. 작가는 그 지점을 부각시켜 거인들로 하여금 왕과 그 병사들을 물리치도록 하는데, 매우 통쾌하게 다가온다.

 

소올직히! 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가가 숨기고 있는, 혹은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여러 번 읽어야 했고, 그럼에도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작품. 하지만 알 듯도 할 것 같은 조언은 <여왕의 궁궐> 속 여왕처럼 삶을 둘러싼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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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현실 편 : 철학 / 과학 / 예술 / 종교 / 신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2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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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홀라당 반해버린 채사장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두 번째 이야기. 2권에서는 <현실너머> 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여기에 속하는 영역은 진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인데 소올직히! 관심많고 좋아하는 예술 영역 제외하고는 읽다가 머리털이 빠질 뻔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학은, 정말, 절레절레. '채사장님이니 이런 나에게도 과학의 세계를 은혜롭게 이해시켜 주실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은 역시나 헛된 기대. 하지만 그것은 채사장님의 잘못이 아니다! 언어와 영어는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잘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과학과 수학 영역 때문에 무척 고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험 당일날까지 개념이 이해가 안 되어 '찍자!'로 밀어붙였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일단 '진리'는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음을 의미하는 절대성과 모든 것에 두루 적용되는 보편성, 모양이나 성질이 변하지 않는 불변성의 속성을 갖는다. 문제는, 이러한 속성을 충족하는 무엇인가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인데 이에 대해 '있다'라고 대답하면 절대주의, '없다'라고 대답하면 상대주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불가지론, '상관없다'로 대답하면 실용주의라고 한다. 진리는 자연신이 진리였던 원시시대부터 고대 신화의 진리인 신화, 중세시대의 진리인 유일신, 근대의 진리인 이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으로 인해 근대가 빠르게 붕괴되면서 현대의 진리는 탈근대성, 포스트모던의 모습을 갖게 된다. 진리의 조건과 역사를 바탕으로 철학, 과학, 예술, 종교가 진리가 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리적으로 검증(?)해가는 과정이 2권의 주요 내용이라 하겠다.

 

다섯 가지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핵심 개념은 절대주의,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다. 철학에서는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소크라테스와 상대주의를 대표하는 소피스트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 중세의 보편논쟁에 다다른다. 이성중심인 근대철학에서는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식론이 대두되었는데,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합리론과 경험론이 대립하게 된다. 합리론에서는 데카르트, 경험론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대표적이다. 칸트의 관념론, 니체의 회의주의를 지나 현대철학에서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탐구,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까지 다룬다. 이리 보면 무척 어려워보이지만 나름 메모해가면서 읽었더니 철학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사실. 절대 한 번 읽어서는 익숙해지지 않는 내용과 단어들이다. 이에 반해 과학 영역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라는 이름만 아스라이 남아있다. 아련히.

 

무엇보다 예술 영역의 이야기를 무척 고대했는데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림 보는 것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그리스 로마 미술부터 중세의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후기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에 대한 내용까지, 채사장님의 방대한 지식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종교'.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차이점부터 '베다'와 관련되어 상대적 다신교로 분류되는 힌두교, 불교, 티베트 불교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앞서 언급한 것처럼 1권에 비해 쉬운 내용들은 아니어서 읽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필기도 하고, 쪼개읽기하면서 주요 내용을 포스트에 정리하며 읽지 않았다면 종합 리뷰는 엄두도 못냈을 터. [제로] 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 지 기대도 되고, 2권처럼 머리를 쥐어뜯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세세한 내용들을 채워나갈 예정! 참고도서들도 소개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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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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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이솝우화를 만나볼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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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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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를 능가한다니, 그 명성 직접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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