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자신들은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딸들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다'고 인터뷰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왕자가 구출하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운명을 남자의 손에 맡기는 여성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을 뿐더러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운동이 격렬히 일어나는 요즘, 이제는 작은 소재 하나에도 여성의 태도와 삶의 방식에 대해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데 이런 기준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것은 차치하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인 위치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 번쯤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프랑스 작가 피에레트 플뢰티오는 [여왕의 변신]을 통해 페로의 동화 속 여성들의 모습을 각색해서 보여준다. [엄지동자]에서 작가를 사로잡은 <식인귀의 아내>를 비롯, <신데렐로>,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하나>,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 <잠자는 숲속의 왕비>, <일곱 여자 거인>, 마지막으로 작가 내면에서 창조된 <여왕의 궁궐>까지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 이야기인 <식인귀의 아내>는 사실 당황스러웠다. 잔혹한 묘사들과 잠자리에서 아내를 거칠게 대하는 식인귀의 모습,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마저 순진무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피에 굶주린 마귀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식인귀의 아내가 변화해가는 모습 그 자체다. 이야기의 초반에서 '살코기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식인귀처럼 살코기를 먹는 대신 모두가 잠든 한밤 중에 채소들로 자신만의 만찬 시간을 가지면서 작은 저항의 모습을 보인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식인귀의 아내는, 물론 매우 슬퍼하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식인귀의 장화를 신은 채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엄자동자에게 '내가 원하는 건 너'라고 당차게 요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여성의 자유. 설사 그것이 가족이더라도 올바르지 않은 형태의 관계라면 떨치고 나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여성의 모습을 가장 찾기 쉬운 것은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남편이 아예 없었던 어머니, 남편이 여럿 있었던 할머니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들이 아이에게 만들어준 빨간 바지가 너무나 잘 어울려 '빨간 바지'라 불린 이들의 여자아이는, 모험가였던 할머니와 기지 넘치는 어머니에 의해 힘도 세지고 지혜도 많아졌다. 게다가 이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늑대를 길들이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그리하여 동화 속에 등장했던 잔인한 푸른 수염을 길들이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푸른 수염이 지하 벽장에 가둬두었던 여성들은, 아주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덕분에 자신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급기야 '여자들이 행복하기 위해 남자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될 수 없다는 조언.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개인마다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결코 남자 하나인 것만은 아니리.

 

[백설공주]를 각색한 <일곱 여자 거인> 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백설공주 역할로 등장한 한 왕비가 아니라 그녀를 위기에서 구원해 준 '여섯 여자 거인'이다. 몹집이 크고 힘이 센 '거대한 유방', 손이 가죽처럼 거친 '예쁜 티눈', 머리를 빡빡 민 '대포알', 눈빛이 너무나 형형한 '화염방사기', 천둥같은 목소리를 지녀 야수들을 달아나게 하고 길 잃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트럼펫', 그리고 마지막 '색녀'. 여섯 여자 거인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여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거인에게는 그것을 비하하는 듯한 이름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거인에게는 그 점을 조롱하는 듯한 거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여성 거인들이 왕비를 죽이러 온 병사들을 막강한 힘으로 모두 제압한다. 게다가 '색녀'는 마지막에는 국회에 진출해 열심히 정치하는 모습으로 기술된다.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부당한) 여성성과 그런 여성성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을 향한 멸시. 작가는 그 지점을 부각시켜 거인들로 하여금 왕과 그 병사들을 물리치도록 하는데, 매우 통쾌하게 다가온다.

 

소올직히! 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가가 숨기고 있는, 혹은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여러 번 읽어야 했고, 그럼에도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작품. 하지만 알 듯도 할 것 같은 조언은 <여왕의 궁궐> 속 여왕처럼 삶을 둘러싼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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