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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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유령은 존재한다]

이 사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요. [스노우맨]으로 깊은 사랑과 부성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잃었고, 결국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고독한 남자. 알코올중독에 신뢰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한 번 마음을 내어준 이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믿음과 애정을 표현하는 남자. 하나뿐인 여동생 쇠스를 아끼는 오빠이자, 그 방식이야 어떻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 주변에 실종과 죽음이 끊이지 않는, 그 자신 또한 언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무모한 남자. 시크하고 주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따뜻한 인정과 슬픔과 외로움을 간직한 남자. 그 남자, 해리 홀레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훤칠한 키에 등판이 넓고 짧게 자른 금발이 빗자루처럼 서 있는, 회색에 가깝게 은은하게 그을린 피부의, 리넨 슈트 차림의 남자가 오슬로 중앙역에 내립니다. 잘 아는 도시, 잘 모르는 것도 생겨버린 도시. 이 도시에 묵기 위해 남자가 레온 호텔로 향해요. 그 남자, 홍콩에서 3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던 그가 지금 오슬로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목숨보다 귀한 무언가, 혹은 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 중심에 그의 사랑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가 있습니다. 라켈을 향한 사랑과는 별개로 올레그와의 이별을 늘 마음 아파했던 해리. 시간은 흘렀고 올레그는 해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타인과도 같은 낯선 존재로 서 있습니다. 올레그를 위해, 라켈을 위해, 그리고 해리 자신을 위해 그는 예전처럼 수사에 돌입하고, 늘 그렇듯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그리고 또한 늘 그랬듯 사건의 진실에 다다릅니다.

 

뿌연 안개로 뒤덮인 것만 같은 [팬텀]입니다.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아요. 이 이야기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가는 것인지, 내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오슬로도, 해리도, 사건의 진실도 모두 유령처럼 부유할 뿐입니다. 그러다, . 어느 순간 알게 되죠.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신중한 장치였음을. [팬텀]을 위해 이런 분위기와, 그런 이야기와, 이런저런 대사들이 필요한 것이었음을요. 어떻게 이런 구성과 대사와 결말을 생각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팬텀은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유령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약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입니다. 혹은 그 자신일 수도 있죠. 올레그의 유령은, 무엇, 누구였을까요. 해리의 유령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쫓아다니지 않는 걸까요. 무엇보다, 앞으로 올레그가 짊어지고 살아내야 할 유령들이, 그의 삶이 걱정됩니다.

 

해리는 담뱃불을 붙였다. 첫 모금을 빨기도 전에 뇌는 이미 니코틴이 곧 혈액으로 들어올 거라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과 밤새도록 되풀이해서 들리리라는 걸 알았다. 감방에서 올레그의 입술 새로 처음 나온, 들릴 듯 말 듯했던 그 말.

아빠.”

<p199>

 

그리고 이 결말. 절대 잊을 수 없는 이 결말을 어찌해야 하나요. 마지막 책장을 넘긴 후 결국 두 손에서 힘없이 책이 떨어져버리고, 그 책이 떨어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보이지 않는 절망과 심연 속으로 추락해버리는 느낌입니다. 그 결말에서 해리가 드디어-라고 생각한다는 그 점이 커다란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와요. 단 한 마디로 [팬텀]을 묘사해야 한다면, 가슴 저미는 스릴러, 라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파도 되는 것인지, 작가님, 정말 너무합니다.

 

해리의 선택은, 결국 어쩔 수 없이 해리다운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형사로서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새로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의 행복을 바랍니다. 간절하게. 그에게 죽음과 어둠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즐거움과 따뜻함도 함께 하고 있다고, 부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조바심 내며 지켜보게 돼요. 아마 전 세계 해리 홀레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소망일 겁니다.

 

출판사 편집부분들께 어서 이 다음 편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대로는 너무 잔인하다고요. 또 다시 해리 홀레를 마주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건지, 그 때까지 저는 해리 홀레와 요 네스뵈라는 유령들에게 잡혀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방은 죽음보다 지독해, 해리. 죽음은 간단하지.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니까. 한데 감방은 인간성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영혼을 먹어치워. 그러다 유령이 될 때까지.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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