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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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마쿠라에 다녀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 같이 공부하던 언니, 오빠와 함께 갔었는데, 그 때는 딱히 가마쿠라에 관심이 많았다기보다 역사적으로 의미도 있고, 또 휴일인데 기숙사에 마냥 있기가 싫어서, 그리고 먼 곳은 여행가기가 힘드니 비교적 가까운 곳을 고른 경향이 컸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위주로 헐렁헐렁 구경하다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나니 왜 좀 더 그 때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그런 아쉬움이 생깁니다. 다 컸다면 다 컸고, 어리다면 어린 스물 한 살이었거든요. 제 자신보다 주변의 눈을 더 생각하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눈이 아직 없었다고 할까요. 돌아와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저런 일이 생기고 생활에 쫓기다보니 한 번 갔던 곳을 또다시 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네요. 가마쿠라의 이 골목 저 골목, 여기저기를 좀 더 누볐어야 했는데 그립습니다.

 

[츠바키 문구점]은 그런 가마쿠라에 위치한 문구점이에요. 대대로 대필을 의뢰받아 명맥을 이어가는 가문이기도 하지요. 주인공 하토코, 일명 포포라 불리는 그녀는(하토는 일본어로 비둘기를 뜻해요.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일본에서는 포포라 한답니다) 선대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가게를 이어받아 문구점을 경영하고 있어요. 물론 조기교육을 받은 덕분에 할머니가 하시던 대필도 같이 하고 있지요. 이렇다 할 친구는 없지만 옆집에 사는 할머니 바바라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대필을 하면서 맺게 된 인연들과 정다우면서도 평화로운 생활 중입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츠바키 문구점을 찾은 사람들의, 여름부터 봄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손편지라니, 말만 들어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네요. 저는 요즘도 종종 손편지를 쓰곤 합니다. 짝꿍의 생일, 우리의 기념일, 그리고 짝꿍과 다퉜을 때도 편지를 써요. 사실 저보다는 짝꿍이 편지를 자주 쓰는 편입니다. 다퉜을 때 주로 메모나 편지를 써서 주더라구요. 흐힛. 덕분에 저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손편지를 잊지 않고 써나갈 수 있었죠. 포포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에 맞는 편지지, 봉투, 우표, 그리고 글씨체까지 고릅니다. 까다로운 시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도,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에게 보내는 거절의 편지도,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첫사랑에게 보내는 편지도 모두 훌륭하지만, 그녀가 단 하나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어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보내는 마음. 이제는 전달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죠.

 

마구마구 감동이 뭉실 흐른다거나 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다만, 소소한 일상이 따뜻하게 그려져 있어서 좋았고, 편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명들이 상세히 쓰여져 있어 하나의 일본문화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멋진 부분은 포포가 쓴 편지들이 모두 일본어 원문 그대로 실려있다는 점이었어요. 오랜만에 접한 원문이라 그런지 저에게 그리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답니다.

 

문득 그리운 것들을 잊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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