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스포가 될지도 모르는 내용이 약간 있습니다 ^^


1935년 출생 작가의 이 작품은, 작가가 태어난 지 그리도 오래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시대적으로 다른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드러날 법도 한데 읽는 내내 그런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의 트릭을 금방 눈치챘겠지만, 트릭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작품 자체에 넓게 퍼져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겠죠. 사람의 마음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비록 미묘한 흔들림은 있을지라도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그리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집중된 사건이었기에 시간적 간극을 못 느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작품은 한 명의 작가가 자살하면서 시작됩니다. 청산가리를 마신 사카이 마사오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창문 밖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아요. 추리소설로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수상 후 이렇다 할 작품을 써내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7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잡지에 투고한 뒤 자살이라니. 그의 죽음에 이상한 점을 느끼고 조사하기 시작한 사람은 경찰도 아니고 탐정도 아닌 출판사 편집자인 나카다 아키코와 잡지에 살인 리포트라는 글을 싣는 쓰쿠미 신스케입니다. 아키코와 신스케의 조사가 양쪽에서 진행될수록 사카이 주변의 의심스러운 인물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사카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사건의 결말에서 범인을 예측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예측도 작가의 힌트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할까요.

 

작가에게 있어 작품상을 수상하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라고 해요. 재능이 있어서 당선된 것인지, 우연한 행운으로 당선된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굉장할까요. 이 작품은 소설로서의 재미도 있지만, 작가로서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 그 뒤편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서도 독자들에게 제시해줍니다. 어쩌면 작가의 고뇌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크나큰 업적이겠지만 한편의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자신의 살을 깎아내리는 일이 된다고도 하죠. 독서를 좋아했던만큼 한때는 멋진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나니 작가가 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방살의]에는 여러 사람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적인 두 번째 작품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작가의 욕망, 병든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아버지의 절망, 그 절망을 이용해서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이기심, 노쇠한 몸이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작가의 한순간의 잘못과 그 잘못을 덮어주고 싶었던 딸의 마음. 한 편의 소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고 각각의 시선에서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초고가 탄생한 이래 40년이 흐르는 동안 미스터리 팬들의 요청에 힘입어 여러 작품이 다시 출간되었고, 2012년 일본에서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보면 작품을 보는 사람의 눈은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트릭 속에서, [모방살의]라는 제목의 여운을 곱씹으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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