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우라 시온의 작품을 몇 권이나 읽어봤는지 검색해보니 꽤 많이 읽었네요. 나오키상을 수상한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을 시작으로 [로맨스 소설의 7],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 [배를 엮다]와 같은 잔잔하고 소박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검은 빛]과 같은 어두운 이야기에 고서점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낸 [월어]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는 깊고도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서 미우라 시온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읽었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글쎄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식하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이 작가의 책을 계속 읽게 되었더라~와 같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끊임없이 읽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읽은 [마사&]은 독특하게도 곧 이 세상을 승천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두 노인의 이야기에요.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이 73세의 할아버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인지 이 노인이라는 단어 선택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다소 천방지축 느낌의 전통비녀 직인 겐지로와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처량한 신세의 구니마사가 반세기 동안 티격태격하며 온갖 일을 겪은 에피소드-는 아니고요(그렇다면 작품의 분량이 어마어마해질 테니까요), 73세의 이들이 조금씩 과거를 추억하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간다는 것 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그려져 있어요. 두 사람만 등장했다면 어쩌면 그저 잔잔하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를 이야기가, 겐지로의 싱싱한 제자 뎃페가 종종 등장하면서 주인공들을 소년처럼 느껴지게 하면서 진행됩니다. 중간중간 불쑥 나타나는 엉뚱한 유머들은 작품에 맛깔스러움을 더해줍니다.

 

난 생각한 적 없어. 사후 세계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해.”

맞는 말이야.”

그런데도 구니마사는 조금 쓸쓸해졌다. 죽은 뒤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는 안된다는 걸 구니마사도 겐지로도 이미 깨닫고 만 것이다. 그것이 쓸쓸했다.

내 생각엔 말이지......죽은 사람이 가는 곳은 사후 세계 같은 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기억 속이 아닐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들도 사부도 집사람도, 다들 내 안으로 들어왔어. 가령 네가 먼저 간다 해도, 내가 죽는 날까지 너는 내 기억 속에 있을 거야.”  -p88

 

투닥투닥 다투고, 삐지고, 다시 화해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역시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외롭게 지내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아내 역시 병으로 먼저 보낸 겐지로, 평생 가족을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와 딸들에게 외면당한 채 홀로 생활하게 된 구니마사.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전쟁 속 폐허 속에서 살아남았음을 확인하고 두 손을 맞잡았던 서로였어요. 싱싱한 뎃페의 눈부신 젊음을 접하며 젊은 날의 그들을 회상하고,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운이 펄펄 넘치던 때의 모습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도 이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꾸리다보니 어느새 나이 드신 부모님의 얼굴도 이제야 자세히 보이고, 제 옆에서 함께 늙어갈 이 사람의 소중함을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느끼게 됩니다. 며칠 전 형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마사&]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나의 시간이 지나가는만큼 부모님의 시간도 지나갈테고, 그러다보면 저도 어느샌가 마사와 겐의 나이가 되는 때가 오겠죠. 그 때가 오더라도 마사와 겐처럼 유쾌하게 살고 싶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소박한 행복. 어쩌면 그것이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의 마지막이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