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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을 전달해주는 아리카와 히로 작가입니다. 이번 [현청접대과] 책날개에는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그 동안 계속 책날개 안쪽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외면했던 것인가요, 아님 이제야 얼굴을 공개한 것일까요. 단발머리에 살짝 보일락말락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는 듯해서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한 느낌입니다. 자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금방이라도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호탕하게 웃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동안 읽은 그녀의 작품 때문이겠지만 작가가 이런 얼굴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를 시작으로 [스토리셀러]를 거쳐 세 번째로 만나게 된 [현청접대과]. 처음에는 발음하기도 힘든 제목으로 인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귀여운 판다그림과 이 봄에 잘 어울리는 민트색 표지만으로도 유쾌똥꼬발랄한 작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문학잡지로 유명한 월간 <다빈치>가 선정한 ‘올해의 책’ 부문에서 1위, 연애소설 1위를 차지했고 쟈니즈의 NEWS 멤버인 니시키도 료가 주인공 가케미즈 역을 맡아 영화로도 만들어졌을만큼 무척 사랑받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조금 먼 예전. 작품에는 이십몇 년 전...이라고 나와있답니다. 고치 성이 서 있는 산자락 밑에 있는 시립동물원의 이전과 현립동물원 신설 계획이 동시에 부상했던 당시, 소리높여 ‘판다유치’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기요토 가즈마사. 하지만 소위 ‘머리가 딱딱한’ 공무원들에 의해 그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되고 한직으로 밀려난 기요토는 결국 현청을 떠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이십몇 년이 지난 후. 현청에는 혁신적(?)으로 접대과라는 부서가 생기고, 고치 현을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요런저런 구상들을 시작하죠.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서 ‘관광홍보대사’를 임명하고, 임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의 진행이 더딘 가케미즈와 현청직원들에게 따끔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요시카도 교스케가 떡! 등장한 겁니다. 유명 작가인 그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된 가케미즈는 벌벌 떨면서도 요시카도가 말하는 내용을 납득하기 시작하면서 공무원으로서는 드문 유연한 머리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 과거 ‘판다 유치론’을 주장했던 기요토를 찾아내고 그와 함께 고치현의 레저랜드화를 추진시켜 나가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 묘하게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리카와 히로 작품의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할까요.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있어요.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있을 법한 성향으로 극이 전개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여느 직원들처럼 현청의 분위기에 젖어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던 가케미즈가 기요토와 요시카도의 조언으로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도 그렇고, 그의 곁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현청의 일을 어시스트하는 묘진 다키와, 점잖으면서도 능력 있는 상사 시모모토, 처음에는 밉상이었지만 점점 호감형으로 변해가는 동료 지카모리 등 인물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게다가 최강 캐릭터를 자랑하는 기요토와 요시카도의 매력은 모든 사람을 그들의 편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는 내용 전개가 산뜻하고 깔끔하다는 점이에요. 질질 끌지 않고 상황이 금방금방 전환됩니다. 심지어 갈등상황조차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앞으로 돌진. 전혀 예상치 못한 진격으로 ‘어라?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쑥쑥 달려나가요. 쓸데없는 지면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러기보다는 ‘나에게는 아직아직 에피소드가 많이 있지.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으하하하’ 의 느낌을 전달해주는 전개여서 작가가 펼쳐보이는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져요. 덕분에 그녀의 책을 읽고 나면 ‘잘 읽었다. 재미있었다’같은, 뭔가를 끝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답니다.
연애소설 부분에서도 1위를 차지했길래 -대체 어디의 어떤 부분에 연애가 등장하는 거야!-했더니, 이거이거 또 가슴을 설레게 하네요.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은 연애묘사인데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살살 간지러워지는 것은, 어쩌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성있는 연애이기 때문인 걸까요. 괜히 기대하게 되는 그런 연애. 우헤. 연애와 여행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렇지 않아도 여행상사병에 걸린 저를 또 한 번 발버둥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레저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저인데도 실제 고치현에 대해 부쩍 관심도도 높아졌고요. 교토의 왕벚꽃이 유난히 그리워지게 만드는 참으로 몹쓸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