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살인사건 -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2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대수롭지 않게 집어든 책에 어느새 빠져들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얼마 전에 출간한 [귀동냥](음..이 작품에 나는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과 함께 '미스터리, 더'라는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무척 재미있었다. 약간 옛날 느낌이 나는 분위기에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을 다시 읽는 듯한 그리운 느낌, 작품 안에서 우에노 역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빈번하게 묘사하는 장면들 때문인지 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가슴 아릿한, 뭔가 아쉽고 슬프고 쓸쓸한 그런 기분이랄까. 내용으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읽은 일본추리소설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비해 크게 뛰어난 점은 보이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가 한 몫 하고 있는 듯 하다.

 

아오모리가 고향인 고등학교 동창 7명. 학창시절 교내신문을 만들던 이들은 편집장 미야모토의 계획 아래 7년 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6년 반만의 설레는 모임. 미야모토가 모두에게 우에노에서 만나자는 편지와 침대특급 '유즈루 7호'의 승차권을 보냈지만 어쩐 일인지 동창 중 한 명인 야스다 아키라가 나타나지 않는다. 워낙 시간이 많이 흘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을 뒤로 한 채 6명은 열차에 오른다. 그들이 떠난 뒤 얼마 후 야스다가 우에노 역 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되고 열차에서 행방불명된 가와시마 시로마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익사체로 떠오른다. 이어지는 친구들의 죽음. 도쿄와 아오모리에서 행해지는 수사는 범행동기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막다른 길에 이르지만 사건은 아주 예전의 불행한 과거로부터 시작되었음이 밝혀진다.

 

고전적인 분위기에 스릴이나 긴장감의 강도가 높지 않아 호불호가 생길 수 있을 듯 하지만 나는 꽤 재미있었다. 급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단계를 밟아나가며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속도도 좋았고, 거칠고 난폭한 형사들이 아닌 세심하면서도 우직하게 그려진 그들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작가는 1978년 도쓰가와 경부가 등장하는 [침대특급 살인사건]을 발표하면서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던데, 이 도쓰가와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가메이와 아오모리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미우라 형사도 듬직했다. 뇌물이나 아첨에 물들지 않은, 오직 사건해결에만 매달리는 우직한 성정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들이라고 할까. 

 

읽으면서 동창생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추측하기는 했지만 밝혀진 동기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더 안타까웠던 듯. 더불어 누군가는 한 순간의 장난으로 잊고 살아갈 수도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에 얽매여 사실을 확인해볼 생각도 못한 채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 범인도,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 희생자들도 가슴 아팠다. 

 

'미스터리, 더'라는 브랜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알 수 없지만 [종착역 살인사건]만큼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요즘은 새로 등장하는 브랜드도, 금방 사라져버리는 브랜드도 많으니. 다음 출간 예정 작품이 미나토 가나에의 [망향]이던데, 이 작품 이후 니시무라 교타로의 다른 '트래블 미스터리'가 출간될 예정인지 궁금하다. 일터에 아내가 찾아와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던 도쓰가와 경부의 우직함이 오래오래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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