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뎀션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1.

한 남자가 철창 뒤에서 시간을 세고 있다. 일초, 이초, 삼초...초가 모여 분이 되고, 분이 모여 시간이 되었다.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존 메이어 프레이. '살인사건'이라는 태풍에 휩쓸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정신을 차려보니 감옥에 들어와 있었고, 오늘, 자신에게 친철하게 대해주었던 옆방 사형수 마브의 형이 집행되었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그는 8번 감방에 갇힌 채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쏟아내는 독설을 견디며 자신에게 남겨진 삶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린다.

 

다른 남자가 있다. 배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배의 동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 그의 눈앞에서 한 남자가 열정적으로 춤추는 여자의 뒤로 다가선다. 사랑했던 여자와 현재 사랑하는 여자를 연상시키는 그녀. 그 남자가 여자의 뒤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순간, 결국 그는 노래를 멈추고 성추행범의 얼굴을 발로 가격해버린다. 두통과 불안함으로 밤을 보낸 그에게 배의 경비가 다가와 경찰이 그를 조사할 것이라는 말을 전달한 후부터 그는 과거가 강렬한 힘으로 자신의 발목을 낚아채는 것을 느낀다. 순간의 실수가 불러온 과거라는 파도. 그것을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2.

실제 범죄자와 전직 기자의 결합을 내세우며 [비스트]로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들의 세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형사 에베트 그렌스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이들 작가의 작품은 매번 발표될 때마다 챙겨읽는 편인데 특히 이번 작품 [리뎀션]은 그 동안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6년 전에 이미 교도소에서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던 존이 스웨덴에서 살아있는 불가사의한 상황을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 안에서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작가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형제도에 대해 소신있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존 메이어 프레이에 대한 사형집행은 어느새 정치 쟁점으로 변해 있었고 주지사의 권위가 걸린 문제가 되어버렸다. 프레이는 죽어야만 했다. 권력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사형존치론자들이 전리품처럼 흔들어댈 또 하나의 새로운 트로피가 될 터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피니건에게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법적 보상의 기회이기도 했다. 반면, 버논 에릭센에게는 무고한 국민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p189, 190

사실 사형제도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나는 어떤 말도 못하겠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누군가가 사형당하기를 바라는 사건을 겪어본 적이 없고, 그저 단순히 뉴스를 통해 흉악한 범죄를 접할 뿐이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범인들을 욕하면서도 사형이 과연 희생자 가족에게 답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범인의 죽음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에게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용서해야 한다고? 범인이 죽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그 사실을 유족들이 정말 몰라서 사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용서해라, 사형제도는 필요하지 않다-등의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3.

그런데. 작가들은 다른 문제를 낸다.

 

 "이런 일도 있어요?"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말입니까?"

"네"

"흔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p249 

예전 드라마인지 책에서인지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위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들은 듯 하다. 한 번 죽으면 끝. 후에 그 사람이 무죄라는 것이 밝혀지고 국가에서 유족들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또 하나의 희생만 늘어났을 뿐. 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간단하지만, 용의자는 계속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증거도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버리면 그 죽음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 것일까.

 

4.

작품은 사형제도의 필요성 여부와 더불어 만약 존이 범인이 아니라면 진범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제시한다. 또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분노에 집착하는 에드워드 피니건과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렸음에도 끝까지 그를 믿는 존의 아버지, 존의 새로운 가족이 된 헬레나와 그들의 아들, 그 가족들을 생각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묘사하며 각자가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답을 생각하라며 재촉한다. 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

 

사실 진실이 밝혀질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읽느라 결말 부분에서 약간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정답.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위해 무고한 생명을 취한 것 또한 결국은 '살인'이라는 생각에 역시 마음이 복잡하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같은, 그런 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인데 왜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무섭고 슬프다.

 

5.

이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세지에 안데슈보다는 버리에 작가의 목소리가 좀 더 강하게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과거 범죄자였던 그.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이 작품을 썼을 때 마음은 어느 쪽을 향해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