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한 남자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습니다. 그의 이름은 양페이. 친어머니가 기차의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어쩌다 세상 밖으로 쑥 나오게 된 그는, 철로에서 그를 발견한 아버지 양진뱌오 덕분에 유복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양진뱌오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죠. 결혼도, 젊음도. 물론 양진뱌오에게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미 마음 속에 들어와버린 아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직 양페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양페이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심지어 아내와 이혼했을 때조차 그의 옆을 지켜준 건 아버지였죠. 그 아버지가 병에 걸려 양페이의 곁을 말도 없이 떠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양페이도 사고로 목숨을 잃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승을 맴도는 영혼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양페이가 죽음을 맞은 뒤 7일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원비로 인해 수도세와 가스비를 낼 돈조차 없었던 그는, 사고로 망가져버린 얼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영혼의 모습으로 스스로 상장을 달고 빈의관이라는 화장터로 향하죠. 친절한 안내인에 의해 번호표까지 뽑았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묘지가 없으면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찾아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그리운 사람들과 다른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혼한 아내, 어렸을 적 자신을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갓난아기였던 양페이에게 젖까지 물려준 이웃 아주머니, 이혼 후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살았던 셋집의 옆방에 살았던 커플, 과외 아르바이트를 위해 찾았던 학생의 죽은 부모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양페이의 곁을 구름처럼, 연기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토록 찾아헤매던 아버지의 행방.
언젠가 저도, 여러분도 죽음을 맞겠죠. 죽음 뒤의 세상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막연함에 가끔 먹먹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느 곳으로 가게 될까. 요즘 특히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다보니 만약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까지 생각하게 되네요. 하지만 이 세상과의 인연이 끝나게 되더라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죽음 뒤에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페이가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그래서 더 가슴 뭉클합니다.
죽음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슬픈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눈물이 났어요. 양진뱌오가 어떤 마음으로 양페이를 키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약속한 아가씨 대신 양페이를 선택할 수 있었을지 전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늘 선량하고 검소하게 아들만을 위해 살아온 삶. 그래서 그는 죽음 뒤에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던 걸까요. 언젠가 찾아올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요. 병에 걸린 채 말없이 나간 아버지를 양페이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렸을 지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찾아헤맨 이야기라 해서 슬픈 러브 스토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던, 슬프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