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저는 S본부에서 수요일과 목요일에 방영하는 -주남자 태여자-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예전부터 워낙 좋아하던 두 배우였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지라 일주일의 활력소가 된다고 할까요. 그런데!! 두둥!! 소간지가 공블리를 잊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공블리를 보호하려다 대신 흉기를 맞은 소간지는 잠시 심정지가 왔을 때 영혼의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공블리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이 죽었다 생각하며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는 준비를 하죠. 그런 소간지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바친 공블리. 영혼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추억을 모두 잊게 하는 수밖에 없다네요. 기억을 잃고 의식을 되찾은 소간지. 하지만 뭔가 답답하고 입 안에서만 맴도는 생각나지 않는 이름 때문에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건 분명 흉기를 맞은 자리가 아프기 때문만은 아닐 거에요.  

 

한 남자가, 영화로 만든다면 무음 상태에서 숨을 가쁘게 들이쉬는 소리로 시작할 것 같은 그런 장면에서 깨어납니다. 벌거벗었고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만 존재할 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조차 없이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온 남자는 이윽고 깨닫죠.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침착하자며 자신을 다독거린 남자가 발견한 것은 BMW 한 대와 '대니얼 헤이스'라는 이름이 기재된 차량등록증. 가까운 숙소로 이동한 그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시간이 됐다'는 생각에 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죠. 드라마인 듯 현실인 듯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 작은 단서로 알아낸 것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라는 것과 사랑하는 아내 레이니를 죽인 용의자로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은 그들의 결혼 생활이 완벽했다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가 때로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과, 레이니가 죽기 일주일 전부터 심하게 다퉜다는 것 등 그에게는 불리한 증언 뿐. 게다가 이제는 정체 불명의 남자까지 그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입니다.

 

대니얼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 달려가는 모습은 조마조마합니다. 과연 그는 정말 대니얼 헤이스가 맞을까, 그가 대니얼 헤이스라면 그는 정말 아내 레이니를 죽인 것인가, 그는 왜 인적도 없는 바다에서 정신을 차린 것인가, 그리고 기억을 잃기 전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점 하나로 작품은 충분한 스릴을 선사해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공포, 그만큼 엄청난 공포는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대니얼이 기억을 찾은 지금, 작가가 준비한 장치가 드디어 제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 이야기는 또 다른 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스릴과 수수께끼를 제공하는 동시에 작가는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억을 잃은 상태의 너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만약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자신일 수 있는가-에 대한. 기억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결혼생활이 완벽했다고 믿은 대니얼처럼, 작가는 과거가 어떠했든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때문에 작품 안에서 과거의 대니얼의 모습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현재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지만, 그럼에도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결국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요소겠죠. 드라마에서 주남자가 잃어버린 무언가 때문에 허전해하는 것처럼. 대니얼이 과거의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기억은 또 하나의 자신이니까요.

 

이 책에는 '인생은 빗방울이야'라는 문구가 꽤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에 대한 작품의 설명은.

 

 메레디스 : 인생이 빗방울이라고요? 

 대니얼 : 한때 내가 사랑했던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해줬어요. 이 말은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한 선택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다는 거죠.

           하지만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한순간에 변해버릴수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p469

빗방울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모양이 다르다고 하죠.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 수많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빗방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결정이 현재의 자신을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 나중에 작품의 세세한 부부은 잊어버린다고 해도 이 -인생은 빗방울-이라는 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스릴러를 읽었는데 감성돋는 시집을 읽은 것 같기도 한 그런 오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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