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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은 온다 여사의 작품입니다. 온다 여사와 저를 처음 만나게 해 준 [밤의 피크닉]을 읽고나서 전 완전히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어요. 우리나라 작품과는 뭔가 다른, 제가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일본의 학생들에게 갖는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가끔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들이 가슴에서 요동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집 안을, 때로는 집 밖을 서성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그 당시의 저에게 [밤의 피크닉]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라면 일단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북홀릭이었던 저의, 북콜렉터라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거죠. 으힛.
그런데 언제부턴가 익숙해져버린 그녀의 방식에 더 이상은 익숙해지기 싫은 거에요. 읽어도 새로운 것이 없다-는, 어쩌면 독자가 작가에게 갖지 말아야 할 가장 최악의 생각이 제 머리에 스며든 거죠. 그런데그런데. 오랜만에 읽은 온다 여사의 이 [Q&A]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구나, 그래 그녀는 여전히 온다 리쿠구나-라는, 그녀의 작가로서의 새로운 입지가 보였다고 할까요. 사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2005년 제5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니, 벌써 8년 전이네요. 8년 전이면 제 나이가..흠흠. 제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즐겁게 뛰어다니던 때에 온다 여사는 이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니 새삼 감동이랄지, 존경심이랄지 그런 감정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1. '질문'과 '대답'만으로 구성된 소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가 오직 '질문'과 '대답'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M이라는 쇼핑센터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진술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정체불명의 물질이 든 봉투를 바닥에 던진 의문의 남자, 그 장면을 보고 동시에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들, 그 사건이 벌어질 때 다른 층에서 '회개하세요!!'라고 말한 이상한 남자, 그리고 역시 다른 층에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되살아납니다. 어떻게 보면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기에 편한 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편이 아닌 장편을 이끌어나가기에는 적잖이 힘이 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챕터마다 새로운 증언과 사건을 계속 도입해야 하니까요.
2. '사실'은 무엇인가
사실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란 걸 인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 눈의 수만큼 사실이 존재하는 거야. -p151
얼마 전 케이블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게스트로 출연한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과 그가 기억하는 것이 전혀 달랐다-라는. 이 작품에서도 그런 현상이 드러납니다. M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고 결국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기억하죠. 자신이 인상깊게 본 것, 주목했던 것이 현실에 반영되면서 전혀 새로운 기억들이 구성되는 겁니다. 진짜 범인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가진 가치관, 선입견의 영향으로 그 범인조차 기억 속에 묻혀버릴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사실'이란 무엇일까요. '진실'이란 또 무엇일까요. 생각할수록 어렵고 오묘한 우리 사는 세상입니다.
3.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목적
M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작품의 마지막에는 그 사건에 대한 '사실'같은 대목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진실'일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분명 어떤 목적 아래 행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길 뿐이죠. 또한 이 '목적'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을 발판 삼아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적의 소녀'는 마치 계속 증식하는 세포들처럼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목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온다 여사 작품스러운 듯, 혹은 그렇지 않은 듯.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기적의 소녀'에 관한 진실은, 으아.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할까요. 자극적이지 않은, 은근한 미스터리의 여왕이었던 온다 여사가 어쩐지 어둠 한 구석에서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씨익 웃는 듯한 기분까지 들 정도로 예상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Q : 저처럼 그 동안의 온다 여사 스타일에 잠시 지쳐있던 분이라도 부디 이 작품만은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A : (당신의 응답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