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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전 일본문학을 좋아하지만 연애소설은 그리 즐겨 읽지 않는 편입니다. 그들만의 쿨함(?), 저의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연애에 있어서의 산뜻함(?) 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져서요. 사람의 마음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우리의 정서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장르가 바로 연애소설인 것 같아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유독 가벼운 태도를 취하는 소설에서만큼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풍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작품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막 사랑이 시작되는 연인들의 감정을 굉장히 농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듯 해요. 그것이 비록 불륜이었지만요.
아내 역할에 충실하고 이웃사람들에게도 친절한 미야코씨. 그녀는 착실한 사람으로 집안일을 척척 해내고 요리 실력이 뛰어난 주부입니다. 매일 저녁 남편 히로시씨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죠. 그 날 있었던 일을 히로시씨에게 즐겁게 이야기하며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녀를 푸근하게 여긴 이웃사람들은 때때로 그녀를 찾아와 함께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그 이웃 중에 '존스' 씨가 있습니다. 그녀를 작은 새처럼 귀엽게 여기며 사랑하게 된 존스 씨.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간 날 그녀가 집에 없으면 금방 시무룩해 지는 존스 씨는 서서히 미야코 씨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은 어느덧 가까워져 필드 워크를 즐기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다니게 된 사이가 되었습니다. 미야코 씨는 이름 모를 설레임을 느끼면서도 존스 씨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히로시 씨에게 이야기하고 그걸로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존스 씨와의 시간이 무척 즐거워지고 그와 헤어지는 시간이 점차 힘들어지게 된 미야코 씨는 이제 그녀가 알던 세상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독특하게도 번역 문장이 '~입니다' 체를 구사하고 있어요. 친근한 듯 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요. 마치 사랑에 관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분위기에서 흘러가는 작품입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에쿠니 가오리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동화를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금방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에는 '불륜'을 다룬 이야기가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번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놀랍다고 해야 할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존스 씨가 미야코 씨에게 품는 감정이 전혀 거리낌이 없어요. 유부녀를 상대로 교제를 생각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뉘앙스의 문장이 있었는데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불륜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큰 일이잖아요. (아닌가요 @.@;;;) 존스 씨와 미야코 씨가 보내는 시간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제 눈에는 존스 씨가 굉장히 이기적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맨 마지막 부분을 보면, 미야코 씨에게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꿀만한 큰 일이었는데도 존스 씨에게는 그저 그 때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인 -앞날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가벼운 일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울컥했습니다.
표지도 제 취향이고 문체도 부드러워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난 후에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에요. 자신이 모르는 세상으로 나와버린 미야코 씨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그것을 정말 갇혀 있던 미야코 씨가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은 것으로 봐도 될지 괜히 고민하게 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않고 존스 씨와 미야코 씨가 보내는 농밀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인 것만은 틀림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