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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에는 서점직원들을 대상으로 어떤 책이 가장 재미있는지 조사해서 주는 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상을 살짝 신뢰하는 편인데요, 그들이 투표한 가장 재미있는 책이 저에게도 재미있더라고요. 결국 책이란 읽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 문단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어야 그 책의 존재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키친하우스]도, 작가도 작품도 아무것도 모른 채 펼쳐들었지만 어쩐지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그밖에 흥미로운 책이 더 있을까요.
작품은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아일랜드에서 살던 라비니아가 배 안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고 어떤 남자의 손에 이끌려 키친하우스에 들어섭니다. 충격으로 말도 잘 못하고 기억을 모두 잃은 소녀. 남자의 이름은 제임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사. 마사도 백인이고 라비니아도 백인이지만 라비니아를 정성껏 돌보아준 것은 흑인 노예들이었어요. 마마 마에와 파파 조지, 마마의 쌍둥이 딸들과 아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인 제임스와 흑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벨이 라비니아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비교적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제임스와 마사의 딸인 샐리가 사고로 죽고, 아들 마셜에게 가정교사가 들어오면서 비극이 시작되죠. 그리고 마셜과 결혼해 이제는 키친하우스의 안주인으로 돌아온 라비니아. 그녀는 과연 어린 시절의 우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그녀를 보살펴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목을 읽는 순간마저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었어요.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저는 그저 이 작품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라는 관점에서 읽었답니다. 부디 라비니아와 그녀와는 피부색이 다르지만 그녀의 가족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악역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요. 감수성을 기르고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사는 매력적이에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도 흥미롭죠. 마법처럼 그녀에게 다가온 한 장의 지도. 어쩌면 이 작품이 탄생한 것은 필연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