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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방독 마스크를 쓰고 있는 표지만 보고 생체실험의 실패로 인해 태어난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니와 '몬스터'이리라-하고. 그 때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 그래, 그동안 의학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이니까 이번에는 과도한 실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인간의 이기심을 질책하는 이야기일 거야. 결국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입장을 자각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반성적이고 감동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는 거겠지. 사실 처음 몇 십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해도 이런 나의 상상이 거의 들어맞을 거라 생각했었다. 나니와-오사카의 옛이름-에 퍼지기 시작한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 그리고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정치인들의 음모. 그런데 웬걸. 이 작품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알아차리니 눈이 뱅글뱅글 돌고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니와의 덴모쿠 구. 운영하던 나니와 진료소를, 아내의 죽음과 함께 아들에게 물려준 지 벌써 십 년. 이 곳에서는 명예의사로 사람들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도쿠에가 아들 쇼이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에 대한 뉴스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소년 하나가 캐멀 판정을 받고, 나니와를 떠나게 된다. 이어지는 나니와 고립 정책. 이미 국내에서 발병했음에도 나리타 공항에서만 특수 검역 작업을 시행하거나, 약독성이 분명함에도 그러한 사실은 알리지 않고 사람들의 불안만 가중시키는 정부의 이상한 정책에 의문을 갖게 된 사람들. 그로부터 이야기는 1년을 거슬러 올라가 나니와 고립에 얽힌 진실을 들려준다.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은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시작으로 시리즈와 그 외 다른 작품을 몇 편 읽었지만,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처음인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엄청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심을 갖게 하다가, 그 뒤에 숨겨진 정치적인 음모를 알게 되고, 의료 문제를 다루면서도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얽힌 이야기를 그리면서 알쏭달쏭하게 진행되어 간다. 일본에서 실제로 2009년에 일어났던 신종 인플루엔자 소동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데 학생 가운데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며, 정부의 대응 등이 실제 소동의 경위와 비슷하다고 한다. 게다가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도주제-일본을 세 개의 덩어리로 나누자-는 실제로 메이지 시대부터 논의되었다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의료 현실을 반영했다기보다 일본의 현실 그 자체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즐기기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현재진행형으로 끝을 맺어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내 경우에는 이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처음 예상했던 전개와 달랐다는 것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일견 허구로 보이면서도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면, 가이도 다케루가 예전과는 다른 작풍을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또 어떤 시도를 할 지, 그것이 과연 작가의 발전과 연결될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