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가쿠타 미츠요 지음, 임희선 옮김, 마츠오 다이코 그림 / 시드페이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저는 유독 제가 쓰던 물건들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직장에서 사용하는 머그컵, 책 읽을 때 애용하는 색연필, 10년 전 일본에서 구입한 열쇠고리, 중학교 때부터 사용한 샤프. 손에 익었던 물건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책상이나 방안을 온통 뒤집어놓는 한이 있어도 꼭 찾아내곤 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샤프를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은 정말 컸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구입했던 붉은색 샤프였어요. 그 당시에 3천원 정도 했었는데 그 때의 저에게는 3천원도 매우 큰 돈이라 샤프를 구입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붉은색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에랏'하는 마음으로 사버렸고 어쩌다보니 10년을 넘게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거에요. 아무리 책상과 서랍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고, 민망함을 무릅쓰고 직장동료들에게까지 물어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샤프 하나 잃어버린 일일 수 있겠지만, 한동안 제가 느낀 헛헛함과 상실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상상하던 대로였다. 내가 알고 있던 마츠오씨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내가 티끌만큼도 알지 못했던 세상이 그려져 있었다. 춥고 따뜻하고, 냉혹하고 부드럽고, 사무치도록 고독하면서 졸릴 정도로 아련한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서로 상반되는 모든 것들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나는 마츠오씨의 그림을 통해 깨달았다. 그것은 결국 잃어버리는 것과 생기는 것, 삶과 죽음의 상반이기도 했다.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는 2005년 [대안의 그녀]로 제132회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죽이러 갑니다] 등등의 작품으로 이미 국내 독자와 친숙한 가쿠타 미츠요의 글에 마츠오 다이코의 그림이 더해진 연작 단편집입니다.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과 가쿠타 미츠요의 이색적인 글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로 등장한 기지타 나리코가 주인공으로 유년시절, 고등학생 시절, 열정적인 연애의 시기, 결혼 후 아이를 갖게 된 때,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이라 짐작되는 시기로 나뉘어져 각 시기에 그녀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잃어버린 것은 물건일 때도 있고 나리코가 가지고 있던 능력일 때도 있으며 그녀의 소중한 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에요. 염소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시절의 나리코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받아들이게 되고, 현실의 부모라면 전혀 납득하지 못했을, 키우던 고양이가 인간으로 환생해서 딸의 친구가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나리코의 부모님은 한 치의 의심없이 인정하기도 해요. 절절한 사랑에 빠진 나리코가 생령이 되어 다른 생령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아이를 잃어버린 나리코가 그 아이를 분실물창고에서 찾는다(물론 여기에는 숨겨진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는 내용들도 어딘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어쩌면.

 

생각해보라고. 운명이라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맺어지지 않겠어?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고, 그렇게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너무너무 괴로워서, 기어이 생령까지 되어버린 정도니까, 맺어지지 못할 상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와 같은 현실적인 문구들이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감성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봄날 햇빛을 받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면서도 우리들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쓸쓸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까요. 더불어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것,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추억과 알싸한 느낌은 계절이 바뀌려하는 이 때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쿠타 미츠요의 글. 한동안 뜸했었는데 어째서 제가 그녀의 작품들을 그렇게 사서 모았었는지, 기억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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