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스릴러와 재미있는 스릴러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요.

신데렐라 카니발 ㅣ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무척 기대한 책이었는데 저는 엄청 읽기 불편한 작품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야말로 하드코어였어요, 으아!! 물론 지금까지 자극적인 스릴러를 읽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거의 모든 불쾌요소의 집합체라고 할까요. 강간, 살인, 마약, 잔인하고 소름돋는 피 튀기는 범행 현장, 스너프 필름, 복수. 형사물 미드에서 보통 몇 편에 나누어 다룰만한 소재들이 한 권에 모여있다 보니 책 자체가 붉은 빛으로 보일 정도에 꿈자리도 엄청 사납더이다. 혹 이런 소재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겠지만 저는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서, 여성이라는 성 자체가 짐승처럼 유린당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 작품이 좋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남성분들이 이런 잔인한 일을 당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주인공은 오랜만에 등장한 율리아 뒤랑, 여형사 되시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데렐라 카니발]은 안드레아스 프란츠 작가가 율리아 뒤랑을 내세운 시리즈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프란츠 작가가 이 소설을 쓰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다니엘 홀베가 그 뒤를 이어서 완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프란츠 작가의 유작이 되었죠. 앞 이야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정황상, 극악무도한 범인에게 율리아가 납치당하고 강간까지 당한 후 일 년 정도 일을 쉰 듯 합니다. [신데렐라 카니발]은 그 율리아가 일 년여의 휴식을 끝내고 돌아온 시점부터 시작해요. 대학생들이 벌인 파티에서 한 여대생이 잔인하게 강간 살해 당하고 약간의 트라우마를 간직(할 수밖에 없겠죠, 당연히!)한 율리아가 형사로서 조바심을 내며 사건해결에 뛰어든다는 이야기.

저는 왜 이 작품이 '18금' 딱지가 붙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만큼 자극적인 내용에, 사상 최악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인의 모습을 그릴 거라면 (물론 스릴러 소설에 등장하는 범인들 중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인간이 드물긴 합니다만) '18금'딱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이야 볼 거 안 볼 거 다 보고 자란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는 최소한의 선은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들이 응징당하는 과정도 허술함이 좀 느껴지고 작가는 반전이라고 내민 카드가 반전처럼 여겨지지 않기도 해서, 과연 프란츠 작가가 생존해 있었다면 어떤 결말을 보여주었을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하드코어적인 내용들이 시리즈 전반에 가득 차 있다면, 저는 율리아 뒤랑 형사의 팬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부디. 현실이 이 소설보다 더 무섭지는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