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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스노우맨]의 작가 요 네스뵈가 귀환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후속작인지요. 스티그 라르손 이후 북유럽 스릴러에 목말라 있던 저의 갈증을 완벽하게 해소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보여준 요 네스뵈와 작품이었어요. [스노우맨]에 관한 리뷰는 '오늘의 책'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흠흠), [스노우맨]도 두 번 읽었을 때 그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레오파드]도 두 번 읽었을 때 그 완벽한 매력에 온몸을 관통당하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중요한 단서가 뭔지, 등장인물들이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바로 와닿지 않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과 드러난 단서들이 눈에 보이는 재미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요런 책들은 두 번 읽어줘야 합니다. 드라마 <신의>처럼 
[스노우맨]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뭔가 정리되지 않은 찜찜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사건해결과는 관계없이요. 저는 그 이유를 우리의 주인공 해리 홀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스릴러에서는 주로 주인공들이 해피한 결말을 맞이하잖아요. 설령 자신의 친구나 가족이 사건에 연루된다 해도 헤어졌던 가족과 화해하기도 하고, 다시 그 관계가 이어지기도 하는데 해리 홀레는 여전히 혼자. 늘 혼자인 고독한 남자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혼자일 것 같은 주인공이 안쓰러워서, 그런 그의 고독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이 그런 찜찜함을 느끼고 애달파하는 걸지도요. 형사가 아니어도 좋다, 이제 형사는 할 수 없다는 해리 홀레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타락의 구멍으로 떨어진 듯한 모습이 위험해 보임에도 끌리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저도 나쁜 남자를 동경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상처 있는 남자는 위험합니다, 위험해.
[스노우맨]의 범인이 눈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면, [레오파드]의 범인은 표범처럼 조용하지만 날쌔고 굉장히 똑똑한 인물입니다. 치밀한 계획과 날카로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잔인함. 그 모든 것들이 맞물려 사상 최대의 인물을 완성했죠. 보통 범인은 등장인물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아서 머리를 마구 굴리다보면 범인이 보이는데 [레오파드]의 범인은 결국 마지막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작가가 마련한 주사위판의 장기말이 되어 요리조리 조종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사건에 더해진 로맨스마저 미스터리함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여, 다른 스릴러물에서는 유치하게까지 느껴지는 로맨스가 해리 홀레의 삶에 있어서는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사랑마저도 미스터리하고 고독하게 하는 해리입니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해리 홀레 시리즈는 아니지만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헤드헌터]도 가족이 등장하네요. 이 작가는 가족관계에 참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해리의 아버지가 등장해서 부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으니까요.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끈끈한 정을 간직해야 할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커다란 구멍으로 가슴에 남아서 결국에는 타인은 물론 자신마저 파괴시키고마는 처참한 결말은 굉장한 비극입니다. 비단 그것은 소설 속의 모습만은 아닐 거에요. 아이에게 잔혹한 부모들의 이야기는 저도 항상 듣고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임을 우리 모두 다시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잔인하기는 하지만 역시 해리 홀레 시리즈는 손에서 놓을 수가 없네요. 이런 저런 가능성을 타진하고 하나씩 소거시켜 나가면서 진실에 근접해나가는 해리. 그리고 숨막히는 긴장감.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고통도 감수하는 그를 보며 삶을 향한 끈질김과 형사로서의 집념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기특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부르르 떨리긴 하지만요. 지금의 모습으로는 라켈에게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해리. 점점 더 속편이 기대되는, 굉장한 해리 홀레 시리즈입니다.
아, 팁 하나. [레오파드]에서는 [스노우맨]의 그 후의 모습도 보실 수 있습니다. 비록 잔인한 범인이었지만 왜 저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오는 걸까요. 부디 부모들로 인해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