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드라마 <솔직하지 못해서>는 트위터를 통해 마음을 나누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것이 아니라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누군가와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어요. 저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모임을 갖는다는 것에 거리감마저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모습일 뿐, 그런 일이 이렇게 금방 평범한 풍경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스마트인이 된 지 이제 2주일 째. 아날로그 인간이라 주장하는 저지만 스마트한 세계가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누구에게나 벅찬 일이니까요.

 

그런데.

 

<크리미널 마인드>는 프로파일러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미국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 중 어떤 범인이 SNS를 통해 희생자를 고르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 희생자의 블로그에는 그녀의 직업, 주소, 사진 등의 개인정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 지, 무엇을 먹고있는 지 등 온갖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었어요. 블로그=그녀의 모든 것. 이었던 거죠. 사실 인터넷상에서 저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런 범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누군가와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지만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 드라마를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는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속속들이 안다는 건 무서운 일이잖아요.

 

[도로변 십자가]는.

 

바로 인터넷 상에서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지, 한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집단의식이 그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하나의 이야기를 아무 의심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진실이라고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발언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 지 늘 생각해야 한다는 점도요. 요즘 인터넷 상에 자주 등장하는 악플로 인한 자살같은 현상은 바로 SNS의 가장 부정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잠자는 인형]에서 동작으로 상대방을 꿰뚫어보던 캐트린 댄스가 이번에는 사이버 수사를 위해 돌아왔습니다. 사실 [도로변 십자가]는 스릴러로서의 긴장과 스피디함은 조금 부족한 편이에요. 다른 스릴러물에 비해 잔혹한 표현이 적은 것은 마음에 듭니다. 제프리 디버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이제 세계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마을'이 되었으니까요. <솔직하지 못해서>의 순기능이 있는 반면 <크리미널 마인드>의 역기능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로변 십자가]에서 작가가 심혈을 기울였다고 여겨지는 점은 캐릭터였습니다. 밖으로 자신을 내보이지 못하고 가상공간에서야 자유로워지는 소년, 이상하다고 여긴 사람을 집단으로 모략하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고통이야 어떻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검사, 진실이라는 미명 아래 타인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블로거 등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각각의 사람들에 실제의 모델이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그 모든 캐릭터들이 모여서 인터넷 상에서의 우리 모습과 지켜야 할 자신의 소신에 관해 꽤 심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정작 주인공 캐트린 댄스의 비중이 조금 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라는 점은 변함 없으니까요. 동료 형사 마이클 오닐과 컨설턴트로 등장한 존 볼링이라는 교수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개인적으로는 오닐이 좋습니다만. 으훗. [도로변 십자가]는 스릴러 작가로서의 디버가 새로운 경지를 밟은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작품인 [XO]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