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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신
린지 페이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19세기 뉴욕의 모습을 잘 나타낸 작품 중 하나로 칼렙 카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꼽고 싶습니다. 읽은 지 꽤 되어 세세한 묘사까지는 떠올릴 수 없지만 읽으면서 19세기 뉴욕의 모습에 꽤나 매혹되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워낙-사라진 것들에 대한, 흘러간 시간들에 대한 동경-이 강한 편이라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좋아합니다. 특히 뉴욕은 범죄의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또 하나의 로망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뉴욕의 19세기라니 당연히 빠져들 수밖에 없죠. 많은 작품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묘사와 분위기 구성 등 19세기 뉴욕을 그린 작품하면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가 떠오른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고담의 신]을 선택한 이유도 딱 하나, 1845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뉴욕에서 최초의 경찰국이 출범한 모습을 그린다니 굉장하잖아요! 마치 'NYPD, Open up!'을 외치는 CSI의 선조들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물론 CSI와 뉴욕경찰은 엄연히 구분되겠지만요). 어린 시절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한 남자가 그 또한 순간의 화재로 얼굴 반쪽을 잃고 경찰이 되어 연쇄아동살인을 해결하는 이 작품은, 뭐랄까, 거친 남자들의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서로 주먹을 날리고 거친 욕설을 내뱉고, 지금같은 과학기술이 없어 직관과 행동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 시대의 거침과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고 종교의 대립이 극심했던 뉴욕의 모습은 마치 암흑과도 같았습니다. 사건도 처음에는 종교적 대립, 인종적 갈등의 양상을 보입니다만, 범인은 의외로 찾기 쉬웠습니다. 느낌이 확 오거든요. 분위기도 그렇고 원치 않았음에도 경찰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것도 저는 좋았습니다만, 저 만족스럽지 못한 별의 이유는 번역 때문이었습니다. 나름 유명한 분이시던데 이번 번역은 좀 어렵게 된 것 같았어요.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있는가하면, 가끔 이를 부득 갈며 포기한 문장도 있었거든요. 복잡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똘똘 굴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데 읽기 힘겨운 문장을 앞에 대하니 조금. 또한 작품의 두께에 비해 사건의 진행이 조금 더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력을 꼽으라면 주인공 티머시 와일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아둔 돈과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빛나는 미래를 꿈꾸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얼굴 반쪽을 잃고 원치 않는 일을 시작했음에도 재능을 발견한 남자. 사건은 해결하지만 사랑을 잃었고, 잃은 줄 알았던 가족을 되찾게 되는 남자. 아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시리즈로 발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계속 읽을 의향은 있습니다. 주인공도 괜찮고 무엇보다 19세기 뉴욕은 매력적이니까요. 단, 번역은 이번보다 이해하기 쉽게 해주시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