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마이클 코넬리 엮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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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리 수많은 작가들이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드높여 찬양했는지, 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그의 작품을 소재로 한 소설, 그리고 영화들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아요. 그 동안 포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나마 읽은 것이라고는 검은 고양이!) 그와 그의 작품을 매개로 한 다른 작품들을 읽어도 깊게 공감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나도 포의 작품을 읽어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그의 탄생일만 되면 무덤에 장미꽃과 코냑을 바치던 이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포는 미스터리계의 황제니까요.

 

이 책은 제가 애정해 마지않는 마이클 코넬리님이 주축이 되어 포의 작품을 엮은 것으로 총 16편의 단편과 에드거 상과 인연이 있다 여겨지는 20명의 헌정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0명의 에세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고 제가 왜 포에게 미스터리계의 황제라는 거창한 칭호를 붙이게 되었는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200년 전의 사람이 썼다고 여겨지지 않는, 현재 우리가 한 번씩은 보았고 읽었던 이야기의 모티브라 생각되는 작품들이었어요. 읽는 내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글은 절대 쓸 수 없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는데, 과연. 그는 광인이었군요. 그의 마음 속에는 얼마만큼의 어둠이 어느 정도의 깊이로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몬틸라도의 술통>과 <검은 고양이>에서는 여지없이 광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윌리엄 윌슨>에서는 이중인격, 혹은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는 듯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독자들을 미지의 세계, 공포스럽지만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어셔 가의 몰락>과 죽음과 최면술의 관계를 다룬 <M. 발데마 사건의 진실>은 오싹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죠. <리지아>에서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엿보이고, 종교 재판소의 감옥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과 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함정과 진자>에서는 영화 <큐브>가 보이기도 합니다. <붉은 죽음의 가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데다  <모르그 가의 살인>과 <황금벌레>는 홈즈를 연상시키면서 뛰어난 분석력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지었으므로 <까마귀>와 <종소리>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단연 <고발하는 심장>은 최고였어요. 그 묘사, 분위기.

 

자. 어떤 누구의 이끎도 없이 혼자서 이 모든 소재들을 섭렵하고 경계없는 작품활동을 보여주었으며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그가 황제가 아니면 누가 황제겠습니까. 어쩌면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을 읽기 전의 저도 분명 그랬지만, 한 번 빠져들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세상을 구축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침대에 누워서 -어디 한 번 보자!-하는 상태였다가, 꾸물꾸물 일어나 집중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정자세로 앉아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재 뿐만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화려한 수식이 돋보이는 문체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온 포의 단편집이 두 권입니다. 영화 개봉을 맞이해 여기저기서 포의 작품을 출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독자인 저로서는 기쁩니다. 여기에 없는 작품을 저기에서 발견하고 아껴 읽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더 레이븐]에는 작가 20명의 포와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뭐랄까, 더 친근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누군가도 좋아하고 있다는 기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할까요. 작가들이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들에게 포가 의미있는 추억이 되었듯이 저에게도 포는 살아있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해요,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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