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단편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0.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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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붙잡은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그 느낌은 대체 뭐였을까요? 오 헨리의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선물> 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름다운 머리채를 가진 부인과 소중한 시계를 가진 남편이 서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에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것을 용기있게 희생할 수 있었던 순수한 사랑 이야기. 저에게 있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마지막 잎새>가 아니라 바로 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어린 나이임에도 그들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오 헨리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네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 정도랄까요. 

 

그런 저에게 오 헨리의 단편집은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30여 편의 대표작이라니, 으흐흐. 마치 좋아하는 과자를 아껴놓고 야금야금 집어먹듯,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은 쪼큼 감질맛이 나서 하루에 두 편 정도 읽었더니 딱 좋았어요.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처럼 알고 있었던 작품은 또 다른 감상으로 다가왔고, 이번에 처음 접한 이야기들은 그들대로 저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쾌한 건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야기임에도 마지막 부분에는 꼭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미스터리 소설도 아닌데 이번에는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그 때부터 이미 즐거워지는 겁니다. 오 헨리가 미스터리 소설을 썼어도 굉장히 잘 쓰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 오 헨리가 처음부터 작가가 아니었다는 점을 알고나니, 사람의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는 말이 떠올라요. 처음에는 약제사로 일하다가 은행원에서 출납계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은행 공금 횡령 혐의로 기소도 되었다가 결국 교도소에서 복역까지 했다니 마치 한 편의 영화같은 삶 아닙니까. 교도소 약제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쓴 글 중 <레이버 캐년의 기적>이라는 단편이 신문에 실린 것을 계기로 오 헨리의 작가 인생이 펼쳐지게 됩니다. 요즘 진로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때라 저의 인생 지도도 이렇게 펼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약제사-은행 출납원-작가. 인생이란 참 오묘한 것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불행한 어린 시절 이야기야말로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경험, 겪어봐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상흔들, 넓어지는 이해의 폭. 좋은 작품이란 수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어린 시절 겪은 뼈저린 고통과 절망이 작가가 작품을 쓰는 데 창조적 에너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는 과정야말로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들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러고보니 세상의 모든 작가들의, 그들만이 가진 고통이야말로 불꽃처럼 그들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이 드네요.

 

금발의 소년이 빨간 풍선을 손에 쥐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비춘 표지가 쓸쓸하게도, 따뜻하게도 보입니다. 그 느낌이 오 헨리 작품의 모든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만에, 그리고 시즌이 아님에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 사랑스러운 작품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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