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을 읽은 후 그 후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른 책들은 한 쪽에 밀어둔 채 [시인의 계곡]을 펼쳤습니다. [시인]이라는 엄청난 작품을 만난 후였기에 -에이, 그만한 작품을 금방 또 만날 수 있겠어?-하는 의심과, -그래도 마이클 코넬리'님이니까-라는 신뢰를 반반씩 안은 상태였는데요, 역시 [시인]의 후유증이 너무 컸나 봅니다, 흑흑. 범인이 FBI 요원인 레이철과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 지 기대했건만. 이 작품에는 전작의 잭 매커보이 기자 대신 마이클 코넬리'님'의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 히에로니무스 보슈, 일명 해리 보슈가 등장합니다. 짜잔!
개인적으로는 잭 매커보이와 레이철의 관계에 아직은 마침표가 찍어지지 않았다 믿고 싶었기 때문에 해리 보슈 대신 잭 매커보이가 등장해주기를 기대했다죠. 해리 보슈는 전직 형사라서 그런지 잭 매커보이보다 마초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으흠. 대충 나이를 계산해보면 50대 정도인 듯 한데, 우리나라의 아저씨가 아니라 로맨스 그레이, 혹은 듬직한 미남형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왜일까요. 으훗.
이야기는 작가의 다른 스탠드 얼론 작품이었던 [블러드 워크]의 주인공 테리 매컬렙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 바로 [블러드 워크]였는데요, 그래도 나름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테리가 죽음을 맞았다는 것에서 1차 쇼크, [블러드 워크]에서 만나 사랑을 이룬 그래시엘라와 결혼까지 했는데도 그 생활이 해피하지만은 않았던 데서 2차 쇼크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결혼은 현실이라지만 테리는 소설 속 주인공, 현실과는 달리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단 말입니까! 작가님의 잔혹한(?) 처분에 -너무해!-를 외치고 말았답니다. 어쨌든 그 테리의 죽음을 수상히 여긴 그의 부인 그래시엘라의 부탁으로 해리는 테리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는데요, 그 접점에 '시인'을 잊지 못하고 기다리는 레이철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범인은 공개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처음부터 범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긴장감이 떨어지라는 법은 없지만, 어쩐지 이 [시인의 계곡]에서는 무지무지 긴장감이 떨어지고 말았다는 느낌입니다. 범인은 이미 알고 있고, 그가 어떤 상태로든 (죽든 살든) 해리 보슈와 레이철에게 잡힐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 과정에서 레이철이 죽는다고 해도(해리는 시리즈를 이끌어 가야 하니까 절대 죽을 수 없겠죠!) 더 이상 충격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시인]과 같은 반전을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바로 동일한 작가의 [시인]이 오히려 경쟁자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도 [시인]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 괴로워했을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조금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어요. 테리는 [블러드 워크]에 등장했고 [시인의 계곡]에서는 [블러드 워크]가 영화화 된 것을 책 속에서도 차용하고 있는데요, 그 외에 테리와 해리가 함께 겪었던 일, 해리와 그의 전처에 관한 일 등이 그저 암시로만 그쳐 아직 해리 보슈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굉장히 답답했어요. 혹시 [블러드 워크]에 등장했던 일이었나 싶어서 도중에 그 책을 들춰보기도 하는 통에 몰입도가 조금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또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왜! 어째서! 해리와 레이철이 므훗한 관계가 되고야 말았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러고나서 레이철은 또 훌쩍 떠나버리잖아요. 마치 할리우드 영화 시리즈에서 매번 다른 여자주인공들과 하나같이 므훗한 관계가 되고 마는 남자 배우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리 보슈도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매번 다른 여자들과 므훗한 사이가 되는 걸까요. 켁. 그러고보니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제인'이라는 비밀의 그 여인은 다른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일까요.
뭐 그럼에도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인의 계곡]은 [시인]과 대결해야 한다는 핸디캡도 안고 있었고, 범인이 이미 밝혀진 상태였으므로 과장된 반전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고 생각하니까요. 시인은 저 멀리 보내버리고 이제부터는 이 히에로니무스 보슈가 간직하고 있는 마력에 빠져보겠사옵니다, 푸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