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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평점 :
한 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의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보우의 성]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와다 료의 작품이에요. [노보우의 성]도 시대극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책 역시. 1556년 센고쿠(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다이묘들의 전쟁을 그린 작품인데요, 타고난 천재 사수인 소년과 도자와 가문의 명장 한에몬, 그의 적수인 기베에의 혈투 속 의리가 빛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기도 하고 안타까운 죽음들도 있어서 때때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싸나이들의 의리와 용기,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높은 자존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승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한에몬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무사로서 비겁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법칙이, 인육을 먹는 병사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목적을 위해 잔인한 방법을 택한 그가 어리석어보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타인이 자신을 평가하는 눈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내면의 눈이겠죠.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무너진 한에몬은 결국 당당한 방법으로 천재 소년 고타로와 마주하며 찬란한 영혼을 되찾게 됩니다.
또 재미있는 점은 한에몬과 그의 적수 기베에의 독특한 관계에요. 전장에서는 적으로, 그러나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같은 편인 병사들보다 더한 우정을 지닌 그들의 모습은 조금 생소해보이기도 하는데요, 상대에게 목숨이 빼앗겨도 좋다, 진정한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크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의 배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신술을 사용하는 닌자가 등장하는 것도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일본영화 <시노비>를 통해 닌자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저로서는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디다.
그리 깊이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오락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만화 [바람의 검심] 속 켄신이 생각나기도 하고, 신념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뻐하며 목숨을 내던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오랜만에 진정한 용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보우의 성]은 이보다 더 평이 좋은 것 같던데, 이제는 한 번 읽어봐도 좋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