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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다 읽은 후 제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바로! -이봐요, 고타로 선생, 지금 나를 놀리는 거?-였습니다. '데뷔 15주년 결산, 혼신의 작품! [골든슬럼버 이후 3년만의 대형 신작 장편'이라는 홍보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저에게는 정말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흔히 하는 말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라 할까요. 아악! 저는 분명 이사카 선생의 팬입니다! 단편집 [피쉬스토리]에 한번에 필이 꽂혀 그 때부터 이사카 월드에 빠져들기를 사양하지 않았고 대작 [골든슬럼버]를 읽고는 이런 작품은 세상에 둘도 없을거야!-를 외치며 그의 팬이 되기를 자처했어요. [골든슬럼버]의 블랙코미디판이라 할 수 있는 [모던타임스]도 [골든슬럼버]만큼은 아니었지만 재밌었고 [그래스호퍼]도 나름 즐기며 읽었으나, 아아. 이번 작품은 가히 던짐을 부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킬러들의 광시곡'이라는 부제처럼 신칸센 안의 여러 명의 킬러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들 와타루를 병원에 누워있는 신세로 만든 중학생 소년을 처단하기 위해 신칸센에 올라탄 전직 킬러 기무라, 의뢰를 받고 미네기시라는 거물의 아들을 구출한 밀감과 레몬, 어떤 트렁크를 가로채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나오, 그리고 그 어떤 킬러보다 잔혹한 악의를 간직한 중학생 소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명의 킬러들까지 이 신칸센 안은 킬러들이 한 차례 전쟁을 벌이기 전의 고요함과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 외로 픽픽, 쓰러지는 킬러들입니다.
킬러들이 등장한다고 하면 굉장히 속도감있고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상상하기 쉽지만, 이 작품에서는 전혀!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학생 소년의 악의에 흠칫흠칫 놀라기는 하지만 마치 영화를 슬로우로 보고 있는 듯한 느린 전개가 속터지게 해요. 페이지를 확인할 때마다 150페이지, 230페이지 이런 식으로 읽는 속도가 더뎌졌어요. 내용 면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읽었지만 실패.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 이 책 저 책 신나게 읽고 있었는데 [마리아비틀]을 손에 쥔 후로는 그 어떤 책도 읽을 의욕을 잃어버렸답니다. 취향은 저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이 책은 블랙홀 같은 작품이었어요, 제게는. 이게 과연 이사카 선생의 작품이 맞는가, 손에 책을 들고 부들부들 떨 정도였습니다.
이사카 선생님, 이대로 저를 블랙홀에 빠트려놓고 도망치시는 건 아니겠죠? 지금까지 당신에 대한 저의 신뢰를 이렇게 배신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에 대한 저의 마음은 포기할 수 없어서 별은 차마 두 개는 못 드리고 세 개 드렸으니까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