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로 다른 아이들이 있습니다. 외로워와 땡큐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선인장.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와 손도 못댈만큼 많은 가시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아이가 만났어요.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아이와 한 곳에서 그 아이가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아이. 그런데 사랑은 그런 것일까요?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아이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 아이 곁을 지키기를 소망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겁을 내면서요. 그런 고양이에게 외로워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선인장 땡큐였습니다. 외로워는 그저 땡큐가 지어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기뻐하면서 그 이름을 받아들이죠. 말 하나에도 조심조심, 행동 하나에도 조심조심. 그렇게 그들의 종(種)을 뛰어넘은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원태연 작가의 시집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관해 많은 시를 써온 그이지만 저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할까요. 너무 감성적이라 그 감성이 철철 넘쳐흐를 것 같은 그의 시를 읽다보면 온 몸을 옭아매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어요. 분명 그는 시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었지만 저는 갑갑함에 '정확히 말로 해! 말!' 을 외치고 싶어질 정도였거든요.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시는 저에게 '답답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글을 다시 접해보니, 어쩌면 저는 그의 글 안에서 답답한 저를 발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고양이 외로워와 선인장 땡큐는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이지만 그들의 사랑도 남들처럼 평범합니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외로워가 찾아와주기만을 바라는 땡큐는 어쩌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소심해요. 내 말 한 마디에 외로워가 그렇게 훌쩍 가버렸을까,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외로워는 지금 어디에서 몸을 피하고 있을까, 다시는 나를 찾아와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지만 고양이 외로워의 마음도 선인장 땡큐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갔는데 땡큐가 자고 있으면 어쩌지, 괜히 깨우는 것은 아닐까, 땡큐의 곁에서 매일 얘기하고 친하게 지내온 비누 쓸쓸이에게마저 질투를 느끼고 자신을 초라하게 여길만큼 땡큐를 사랑해요. 

 

사랑하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참 간단한 것이 사랑이고 인연인 것 같은데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몇 번이나 꺼내려던 이별의 말들도 그 사람의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 마디, 생각지도 못한 배려심에 쏙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자신의 마음에 때로는 자신이 더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죠. 어쩌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로워와 땡큐처럼 겁쟁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상처도 두렵지만 그를 상처받게 할까봐 무서워서요. 아니, 어쩌면 그것도 핑계일까요? 사실은 자신의 상처가 더 두렵기 때문인지도.

 

외로워와 땡큐의 이야기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비누, 쓸쓸이가 있습니다. 쓸쓸이의 사랑은 그 이름만큼이나 쓸쓸해요.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포용해가는 외로워와 땡큐는 행복한 커플입니다. 쓸쓸이는 자신의 존재도 그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없으니까요. 늘 그의 손길을 받지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쓸쓸이. 비가 와서 그런지 외로워와 땡큐보다 쓸쓸이의 마음이 더 아프게 와닿습니다.

 

오디오-그래픽-노블이라는 문구처럼 음악과 그림과 글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전 음악없이 책을 한 번, 음악을 들으면서 또 한 번 읽었는데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음악이 없을 때 조용히 읽었을 때가 좋았어요. 총천연색의 색감과 독특한 그림들이 한층 글을 풍요롭게 한 책입니다. 고양이와 선인장, 그들의 사랑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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